3) 하가점하층문화인
그림25) f4-stat(WLR_LN,Mbuti,Korean,Test)

하가점하층문화 이도정자(二道井子) 유적의 선사시대인은 앞의 Treemix, PCA, Admixture 분석 등을 통해서, 황하유역에서 온 성분이 이전 시대 홍산문화인에 비해 급격히 늘어나, 요하유역보다는 화하족의 기원지라 여겨지는 황하유역 선사시대인과 묶여질 수 있다는 점을 볼 수 있었다. 여기 f4-statistics에서도 앞의 홍산문화 반랍산의 선사시대인과 달리, 중국 한족들이 한국의 서울지역과 이도정자 고인골과의 유전적 거리가 거의 차이가 없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산동성, 절강성, 강소성 등 황해 연안에 위치한 지역들의 한족들이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데, 한국인은 전체적으로 중국 한족보다 약간 더, 그리고, 다른 동아시아인집단보다는 차이가 확실하게 이도정자인과 유전적으로 공유하는 성분이 많다는 것을 알 수있다.
한국인 집단에서는 제주도인이 서울지역보다 명확히 이도정자 선사시대인들과 거리가 먼 것을 볼 수 있는 데, 오히려, Japanese와 Jpn_23andme의 두 일본인 집단이 제주도인보다 이도정자인에 유전적으로 더 가깝고, 경남, 경북, 전남은 거의 차이가 없이, 서울지역 사람보다 이도정자 선사시대인에 가깝다. 이도정자인은 홍산문화인과 달리, 지리적으로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황하유역 성분이 많기 때문에, 이들이 원래부터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과 유전적으로 유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이도정자인과 한국인이 유전적으로 거리가 가까운 것은 이들 이도정자인의 후예들이 한반도로 대거 이주했고, 이들의 이주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일본열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한반도 토착인 성분이 많은 제주도인이 이들과 거리가 멀다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위의 그래프에서, 경북, 경남, 전남의 세 인구집단이 비록 절대값 |3|이 넘는 의미있는 차이는 아니지만, 수도권사람들과 상당한 차이로 이도정자인들과 유전적 성분을 많이 공유하고 있다. 이들이 연해주방면에서 동해안으로 온 것이 아니라, 서해쪽에서 왔기에, 전남지역이 미세하게 경북, 경남보다 이성분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이도정자인과 유사한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이, 요동-한반도 서북부-중부-남부로 이어지는 육로로 이어지는 순차적인 경로에 따라, 한반도에 진입한 것이 아니라, 요동에서 직접적으로 해로를 통하여, 충청도나 전북의 해안에 도착하여, 한반도에서 확장을 시작한 집단과 관계가 있지 않나하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송국리문화인이나 마한의 지배세력 등이 그 후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차후, 한반도의 서해안 유적들에서 고인골의 유전자가 데이타가 나온다면, 이러한 추정에 대한 확인이 가능해질 것이다.
하가점하층문화가 홍산문화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유적 둘레에 성을 쌓은 것이다. 하가점 하층 문화 유적에 나타나는 성곽 축조방식은 1)돌을 잘라서 쌓은 것, 2) 성문 밖에 방어를 위해서 또 하나의 옹문(瓮門)을 만드는 것, 3) 성벽에 마면(馬面) 이라 하여 삼면이 경사진 벽으로 튀어나온 망루를 만드는 것, 4) 성곽 내에 제사를 위한 제단이 있는 것 등 약간 앞선 시기인 4300년 전에 축조된 섬서성 신목현의 중국 내 선사시대 최대 규모의 성곽유적인 석묘유적과 유사한 점이 많으므로, 이 석묘유적의 성곽을 만든 이들과 하가점 하층 문화인들이 어떤 관계가 있을 거라는 견해도 있다(王禹浪, <东北古代民族筑城源流及文化特征述论> 2018). 석묘유적은 앙소문화가 북상하면서, 남하해 온 홍산문화인을 만나, 만든 해생불랑문화의 하나로 여겨지는 데, 이 점에서 하가점하층문화는 단순히 지역적으로만 홍산문화를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황하 중상류까지 진출했던 홍산문화의 후예들이 다른 문화와 융합한 후, 다시 돌아와 우회적으로 계승한 문화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가점하층문화가 같은 황하유역이라도 용산문화와 같은 중원지역이 아니라, 석묘문화와 같은 중원과는 다소 떨어진, 해생불랑문화의 영향으로 생성되었다면, 한국인에게도 비교적 높게 나타나는 황하유역 성분의 기원이 어디인지, 왜 석묘문화성분이 한반도 남부의 사람들에 높게 나타나는 지의 원인에 대해서, 보다 근접한 설명이 될 수 있다. 즉, 석묘문화와 같은 황하유역 성분은 직접적으로 한반도에 도입된 것이 아니라, 하가점하층문화와 같이, 지역적으로 문화적으로 보다 근접한 중간 지점을 통해서 왔을 가능성이 높다.
하가점하층문화의 발달된 축조술은 이후에, 중국 동북지방에 존재한 여러 민족들에 전해지는 데, 실제적으로, 잦은 이동으로 고정된 거주지나 인구가 집중된 도시가 없었던 유목이 주가 된 흉노, 선비, 실위 등의 민족들은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기 어렵고, 반농반목의 예맥계통, 그리고 이후에 부여와 고구려가 하가점하층문화인의 성곽축조 전통을 이어갔다고 볼 수 있다.
약 4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이도정자 유적은 하가점 하층문화 유적들에서 일반적으로 돌로 석성을 쌓은 것과는 달리, 부여나 백제의 성과 같이, 판축기법으로 토성을 쌓고, 성곽둘레에는 환호를 만들었다. 집 자체도 흙을 이용해서 지었고, 이 흙으로 만든 집들과 성곽이 튼튼해서, 대부분 무너지지 않고, 도로나 가마터와같은 다른 시설들도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서, 중국에서는 급작스런 화산폭발로 화산재에 덮여서, 건축물등의 현장이 잘 보존된 이탈리아의 폼페이 유적과 비슷하다고 해서, ‘동방의 폼페이’라고도 불린다.
이처럼 흙을 이용해서 집을 짓고, 돌이나 흙으로 성을 쌓은 것에 능한 것은 황하유역 용산문화 시기의 여러 유적들에서도 보이는 것으로, 홍산문화에서 보다 분명하게 보여주는 정착생활과 농경 위주의 경제 등의 생활양식과 새로운 기술들이 그저 문화전파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인구집단의 이주와 함께 했음을 상염색체 분석의 결과로 알 수 있다. 토기류에서는 한반도의 선사시대 유적에서는 보기 힘든 황하유역에서 기원하는 삼족기 등이 많이 보이는데, 이것으로 볼 때, 이도정자인과같은 하가점 하층문화인이 집단적으로 한반도로 곧바로 이주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들 하가점하층문화인들이 약 3300년 전 이 문화가 소멸된 이후, 목축이 주요한 생업으로 건조농업과 병행하는 하가점 상층문화가 성립되기 전까지 약 300년의 공백이있는 데, 이 기간 동안, 기후가 한랭하고, 건조해져 농경이 어려운 요서지역을 떠나, 기후가 보다 온난하고, 농경에 적합한 요동지역으로 이동하였고, 이들이 한반도 서북부에 나타나는 미송리형 토기와 지석묘 등으로 대표되는 쌍방문화나 경남 진주 남강 일대에도 나타나는 각목돌대문토기, 석관묘를 남긴 마성자문화와 같은 한반도와 보다 연관성이 높은 집단에 합류한 후, 한반도로 이동했을 것이다.




덧글
비록 유전자분석을 통한것이지만 제가 지금까지 봤던 상고사의역사적증명중에서 이렇게 사실적이고 독창적인 글을 본적이 처음입니다 ...
더이상의 다른 이론의 여지가 필요없을만큼 대단하게 느껴지는군요 ...
벌써 앞으로 남아있는 부분도 기대됩니다 ...
대략적인 내용은 알겠으나 아직 유전자부분은 제가생소하여 여러번 읽어봐야하겠습니다 ...
질문이있는데
WLR_LN,Mbuti,Korean에서 LN은 하가점하층문화이고Mbuti 는 무슨 뜻인지요?
Korean 은 지역중에 서울로 보면되는거죠 ?
그리고 오렌지색 점선은 하가점하층문화와 서울을 동일하게보면되는건지요 ?
오렌지색 점선과 서울을 말씀드리는건데 kn 경남 kb 경북 이런지역은 보이는데 점선이 무엇을 가리키고 또 서울지역이 제목외에는 지역영문으로는 따로 보이지 않아서요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
그래프를 보니까 홍산문화는 우리와 독보적으로 가깝고
하가점하층문화도 다른 동아시아민족보다 훨씬 가까워보이는데 거리가 가깝고 친연성이 있다는것을 분자인류학적으로 어떻게 해석을 하면되는지요 ?
제가 지식이모자라 아직 잘모르고 성급하기도하지만 저정도 차이면 유전학적으로나 역사문화적으로 우리민족이 대다수이고 주맥으로봐도 될듯한것같은데 ...
제가 이런부분을 궁금해하는것은 결국 유전학도 우리민족과 거리가가깝고 민족의기원에 그치는것이 아니라 문헌이나 고고학과 함께 연결되어 우리역사를 제대로 규명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분자인류학적으로 그당시 인종구성원중에 우리민족의 비중이 다수였는지 소수였는지가 중요할것입니다 ...
물론 초재님입장에서는 이것은 한국민족의 기원을 찾는데 최종결론일수도있고 수치를 말씀하시는게 신중하고 부적절할수있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반대로 유전학적으로도 그수치를 알수있다면 제나름대로 역사를 해석하는데 더객관적인 저의 데이터가되기때문입니다 ...
수치에대해서는 노코멘트하셔도 됩니다 ^^
글중에 홍산문화는 우리민족뿐만아니라 동아시아 중국 일본 몽골도 어느정도 계승되었다는 초재님의 말씀으로 대신
해석하겠습니다 ...
위에 두문화들이 거리가가깝고 친연성이 있는부분은 유전학적으로 어떻게해석해야하는지 제가 잘몰라서 한말씀만 더 부탁드립니다 ...
질문이 있는데 그럼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의 그래프에서보면 민족중 현대한국인과 가장 가까운데 가까울수록 홍산문화의 상염색체 비율이 올라가거나하는 관계 또한가까울수록 부계모계하플로와 많이난다는식의 그러한 관계는 어떻게되는지 궁금하고 우리나라 홍산 70% 남방중국인 30%처럼 중국과 일본,몽골의 보통상염색체 성분은 어떠한지요?
제가 지난번에보니 한국인은 o2b와o3 부계하플로가 대부분이고 n타입은 4~5%으로 다소 비율이 적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초재님 글내용을보니 지금은 4~5% n타입이지만 홍산문화시기에는 요서와 요동 한반도?에 n타입이 다수였을것이다 그리고 홍산 우하량에 지배층이 우리와가까워보이는 o타입이 있었고 추후 하가점하층문화 상층문화때 o타입이 대폭 증가했다고 말씀하신듯합니다 ...그럼 그당시 우리민족의 문화적 영역인 고대의 요서만주 한반도로 n타입이 다수이동한것으로보이고 이때 중국이나 일본 몽골등에도 어느정도 n타입이 이동한것으로 보이고 앞서 홍산문화의 우리민족등 종족구성 비율을나누는건 어렵다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하다보니 홍산문화의 후손들 가운데 한반도로 온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간 사람보다 많았을 따름이라고하셨는데
질문인데 만약 그당시 이동을 단순하게 100명이 했다고 가정한다면 다른곳은 제쳐두고 요동과 한반도로 이동한 사람만 놓고보면 몇명이라보시는지요 ? 물론 유전학적으로 이러한것을 추정을못하거나 할수없다면 말씀하지않으셔도 됩니다 ...
그 이동은 일부 중국으로도가고 몽골로도가고 고대에 우리의영역인 요동이나 한반도로도 다수로 가기도하고 한반도를 거쳐서 일본으로도 일부 이동했겠지요... 또한 요서에 계속 머물러 고조선으로보이는 하가점하층문화를 이룩하고 추후 위영자 능하 문화로 이어지고 이러한 시기들에도 여러번 민족의 이동은 요동을 거쳐서 한반도로 들어오게되었겠죠 ...한반도 뿐아니라 요서를포함 만주가 멀리는 400~500년전 가깝게는 100~200년전까지도 우리문화공간이었으며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도 우리민족의 공간이었으니 어떻게보면 그시기에 이동을 보지않아도 현대한국인이 유전적으로 가장가깝고 친연성 있는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듭니다 ...저는 고조선이 연의 진개침입이 이뤄지는 기원전 5~6세기 전까지 여전히 조선의 중심영역은 요서에 계속머물러있었다고 봅니다 ... 물론 문화적으로는 이미 비파형동검등으로 요동에 영향을 미쳤고 요동에는 고조선과 비슷한 연맹체국가가 있었다고보고 진개의 침입후 요동으로 조선의 중심지가 옮겨진것으로 보고 추후 위만조선해서 한반도로 들어오게되고 ...조선이 요서에 오랜동안 머물렀지만 요동 또한 당연히 우리민족의 역사라고봅니다 ...분자인류학카페들어왔는데 자꾸 삼천포로 돌아가는군요^^
지난번에 제가 거슬러올라가 한국 중국 일본 몽골 민족구성비율을 말씀드린것은 어렵다는것에 저도 이해와 공감을 합니다 ... 그렇다면 거슬러올라가는게아니고 또한 역사문화적으로계승말고 지금 현재에서 전적으로 분자인류학으로만 민족으로 현대 한국 중국 일본 몽골을두고 홍산문화 하가점하층문화유전자계승 민족구성비율을 본다면 어떻겠는지요 ? 만약 구할수있다면 우리민족만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 다른민족도 알수있으면 알려주셔도 되고요 ...
또한 물론 이질문에도 대답하기 어려우시면 노코멘트 하셔도 됩니다 ...
제가 과거와 현재 질문을 비슷하게 민족구성비율로하는것은 앞으로 분자유전학을 통해서도 얻고자하는 해답은 그시기를 우리민족의기원과 역사문화적 계승을 유전학을 통해 추측하고 가늠해보고자 하기위함이고 제가볼때는 이것은 매우중요한것이라 생각하기때문에 이런질문을다시하는것이니 양해바랍니다 ...
어쨌든 추후에는 이런 난감한 직접적인 질문을 이제 하지않도록 하겠습니다 ^^
앞으로 분자인류학을 이해할려면 공부를 더 많이 해야겠습니다 ...
중국 한족은 홍산문화인 52%+ 대만 Hanben(오늘날 대만 원주민의 조상) 48% 정도로 나온다고하셨는데중국인도 홍산문화인 성분이 50%정도 나온다니 결코낮은수치는아니군요^^
저는 중국한족하면 홍산문화인보다는 중국한족이면 황하문명의 수혜자들이므로 황하유역인이라 먼저 생각을했는데 저정도 수치가 나오는게 거리상이나 역사 문화적으로는 요하문명과는 이질적 부분이많다고 생각했었는데 홍산문화성분이 많이 나온것이 조금 놀랍고 이해가 얼른되지를않는군요 ^^
홍산문화성분이 중국인은 50%정도이고 한국인은 70%여서 20%정도 차이가 있는데 이정도차이면 많이 큰것인지 아니면 차이가 적은것인지 어떻게해석이되는지요 ?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 그래프에서는 중국인은 홍산문화와 거리가 좀있어보이고 하가점하층문화에서는 거리가 상대적으로 가까워보이는데 홍산문화의 경우에는 중국인이 홍산문화성분 그차이가 20%인데 어떻게봐야하는지 흥미롭군요 ...
어쨌든 그차이가 가까운 하가점하층문화 경우에는 중국인과 한국인이 유전적으로는 물론 역사적으로도 공유되는바가 제가 생각한것보다는 더 크다고 느껴집니다 ...
이문화와 가까운 중국지역이 산동 절강 장수성등의 일대인데 어쩌면 이시대에 고대 동이와도 연결이 되는게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홍산문화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일본과 가까운데 그렇다면이시기에 일본으로 홍산인이 많이 건너가고 우리와도 공유되는바가 크겠군요 ..
저는 보통 일본의경우에는 가야 백제 고구려 신라때 민족의 큰이동이 있었나봤는데
특히 400~600년에는 일본은 백제라 보는사람인데 이시기를 일본이야 부정하고있지만 백제의 제후국이나 식민지로보고 600년이후에는 세력이커지고 그후 일본이라는 국호를 칭하고 독립하고 마치 영국과 미국관계와 비슷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어쨌든 이시기에만 유전학적으로 역사적으로 한국인과 공유되는바가 크다고 생각했었는데 ...
일본서기는 백제가 망하고 백제 가야인이 쓴건데 주객전도해서 거꾸로 역사를 해석하면 백제가 본국으로 보입니다
이러한것들이 역사의 사실이라면 이것을 증명하는데 분자인류학이 절대 필요한것이고 임나일본부 떠들어대야 유물도없고 일본에야 백제관련 유물차고도 넘치는데 이하나만 가지고도 저렇게 떠들어대는 일본이란 나라는 참ㅋㅋ
그저 웃음만 나오지요^^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의 그래프에서보면 민족중 현대한국인과 가장 가까운데 가깝거나 혹은 멀수록 홍산문화의 상염색체 비율이 올라가거나 낮아지는 그런관계가있는지 또한 가깝거나 멀수록 부계 모계하플로 비율이 높고 낮음의 차이가 어떻게 되는지도 알수있겠는지요 ...
또한 현재 북한지역과 조선족의 홍산문화인 데이터는 따로 없으신지요 ...
일이바쁘신데 제때 답을 안주셔도 저는 상관없습니다...
그냥 시간이되실때 위에 제가 수정한 댓글에대한 부연설명부분있으시면 좀더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저도 말씀내용 데이터 다시 체크해보겠습니다 ...
조만간에는 초재님의 카페로이동해서 말씀나눠야겠습니다 ...
좋은하루되세요^^
제가 다시살펴보건대 홍산문화인 20%정도의 차이가 적지많은 않은 수치로 보입니다 ...
역사적 사회적 해석이야 서로가 달리하겠지만 저정도의 차이일지라도 역사적 문화적 주맥을 결정짓는데 우리에게는 중요한 자료가 될것이라고 생각이듭니다 ...
현대중국인이 역사문화 기원을 주나라로보지만 상염색체등 유전적으로볼때 그기원을 상나라와 동이로 본다는것이매우흥미롭고 고대의 우리민족과도 연결되는바가 적지않을것 같아서 추후 동이에대한 글이 기대됩니다 ...
일본에대한 내용은 크게는 비슷하게 생각하지만 특히 시기적으로는 약간의 차이가 있어보입니다...
지금이나 중세 근세근대 일본과 한반도전체 인구를 비교하면 한반도는 일본인구의 60~65% 정도로보면 크게무리가 없어보입니다 ...아시다시피 산업화이전에는 농업이 매우 중요했고 대략 땅크기등을 비례해서도 그 인구를 추정해볼수있습니다 ... 물론 몽골초원을 인구에 비례할순없겠죠
일본에서는 8세기전후 그들의 고대일본의 인구를 대략 500만 내외로보고있습니다...그러나 우리의 삼국사 초나 그이전 야요이시대 인구는 한반도에 비해서도 매우낮게 추정하고있고
야마토조정 통일로 보이는 3~4세기 이후로는 증가하고 일본이라칭하는 시기전후에는 더욱 증가를합니다 ...
그래서 저는 일본이 제대로 통일을 이룬시기를 7세기중반으로 봅니다 ...
한반도에서 백제등 문화가이식되고 문물이 수용된시기 봐서 이전글내용그대로 판단 추정합니다 ...
저는 이런인구에 관심이 좀있는편인데 제가 추정해서는
일본과 비슷한 8세기 전후 한반도인구를 300만내외 만주전체인구를 400만정도로보면 무리없다고 봅니다 ...
사실 인구증가에는 농경이 중요한데 모내기등 농업이 많이 발전한 중세이후에는 인구증가가 폭이 컸지만 고대에는 점진적으로 증가했습니다 ...
크게보면 저는 일본의 인구나 생산성증가를 초재님이 생각하시는것보다 200~300년정도 늦게 이뤄진것으로 보면 시기적으로 맞다고 봅니다 ...
시기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만약 이부분을 가지고 저는 따로 논쟁을 하고싶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씀을 드렸듯이 분자인류학적으로 상염색체나 하플로관계등 제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1~2번 더 글내용을 읽어보았더니 많은 이해가 되었고 그동안의 궁금한부분이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또한 제나름대로 분자인류학을 가지고 우리 역사문화적으로 연결을해볼수 있었습니다 ...
초재님의 여러글들을 다시읽어보고 느끼는것이지만 분자인류학적내용은 물론 그것을 역사적 사실과 연결시키는 부분에대해 정말 독창적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 정말 저는 이러한 내용들이 하루빨리 결정되어 우리의 아이들이 제대로된 역사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홍산문화나 하가점하층문화 한사군문제 동이족과의연결 만주족에대한 유전자추정등 상고사 고대사에 있어서 제가 지금까지의 초재님의 댓글이나 글내용들로 보건대 역사를 해석하는데 저와도 비슷하거나 공감되는부분이많고 비록 제게 직접적으로 표현은 안하시지만 역사적 정체성이 매우 가까움을 저는 느끼고있습니다 ^^
초재님이 혹시 중세근세사에도 관심이있으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시기 역사에서
최근에아 고구려의 평양이 지금의 한반도평양이아닌 요동의 요양에 있었으며 고려의 국경선이 고려시대에도 현재만주의 선양시까지 걸쳐있었고 이것은 조선의 1400년대까지도 그렇게 만주에 절반정도의 영토를 점유한것으로 보입니다 ... 1400년대이후에도 여전히 우리가 알고있는 이른바 간도는100년전에도 조선의 영토로 있었습니다 ...
고려국경선자료는 요사 금사 원사에 명확히 고려의 영토를
기록하고 있는데도
조선초의 성리학자들은 이들의 나라를 오랑캐라라 무시하고 중국을의식해서 고려가 황제국이었지만 제후국으로 기록했고 영토마저 축소시키는 바보같은짓을 했습니다...
조선후기 정약용같은 대실학자도 조선초 성리학자의 견해를 추종하는 오류를범하고 이는 일제 쓰다소이치같은 식민사학자들이 올커니하고 더욱악랄하게 역사를 현재와같이 왜곡축소조작해서 한반도로 가둬버렸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시피 이것을 무비판적으로 친일사학자 이병도가 받아들여 현재 우리가 배운대로의 고려국경선을 배우기에 이른것입니다 ...
사실 저도 처음에는 어떻게 우리영토인데 아무리 이병도가 친일이라고해도 이럴수있을까했는데 몇번을 살펴보았는데 일제사학자에 의해서 그렇게 축소되었다는것을 알고 매우 충격을받았습니다 ...
고려국경선부분은 현재도 인하대팀이 국비로 연구하는 프로젝트로 요금사 원사등 여러 기록이 명확하고 요나라탑위치등 이미 충분한 증거가있고 이것에대해 고려사 연구하는분이 아직 반박은 없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 ..
제가 보기엔 이것은 반박불가의 사실로 보입니다 ...
고려국경선이 재정립된다면
머지않은시기 역사학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수밖에없다봅니다
이처럼 이사실은 발해이후 만주를 잃어버렸다고 배워온 우리는 놀랍지않을수없는 사실입니다 ...
이처럼 일제식민학자가 가장크게 우리역사왜곡날조한부분이고려국경선으로 만주를 통째로 중세이후 한국사에서제외시켜버렸습니다 ...
이것을 비판하나없이 그대로 배워온게 현실이고 안타깝기만하네요 ...
사실 초재님도 아시겠지만 친일사학 이병도의 후예들이 현재 강단사학의 주류인데 비주류사학자나 재야사학들이 이를 뒤집기는 쉬운일이 아닐것입니다 ...
분자인류학에도 이런 그늘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그러나 결국 분자인류학으로 꼬여있는 상고사 고대사 부분이 제대로 해결이되고 중세이후에도 이런문제등이 역사적으로 제대로정립되어야 결국 우리민족역사는 바로 설수있을것이라보고 또 반드시 그렇게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중세사를 제대로 해석하는데는 분자인류학도 반드시 필요한부분이 있을것입니다 ...
추후 이문제에대해서도 다룰수있는부분이 혹시 있으시다면 또다른 주제가 될수있다고도 봅니다 ...
어쩌다가 고려국경선까지^^ 언급이 되어버렸는데 다르게생각하는부분도 있으실텐데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앞으로는 다음카페에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