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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jae


고인골 게놈 데이타로 알아 보는 한국인의 기원-3-(3) 인류

3)      요하유역

내몽골지역에 위치한 유민문화에서 나온 샘플은 요하유역 문화는 아니지만, 다른 지역보다 요하유역 샘플들과 유전적 구성이 유사하므로, 이번 요하유역 샘플과 같이 넣어서, 분석하기로 한다.

 

(그림9) 요하유역 Admixture (K=3,K=7)



 

요하유역 샘플 가운데, 유민문화, 합민망합문화하가점상층문화의Outlier 북방성분이 많고, 반대로, 하가점하층문화의 이도정자유적에서 나온 샘플들이  남방성분이 많다. 이도정자유적에서 나온 샘플은 PCA도면에서도 황하유역 샘플들과 거의 같은 위치에 있고, Admixture K=7에서도 황하유역 성분이 압도적으로 높다. 유민문화 샘플은 K=7에서 약간의 카자흐스탄 보타이문화가 중심인 서유라시안성분이 약간 나온다. 아무래도, 시베리아나 몽골고원과 가깝기 때문에, 여기에 활동하던 서유라시아계 초원민족들과 약간의 교류가 있었던 흔적일 것이다.

 

합민망합문화의 샘플(HMMH_MN) K=7에서 황하유역과 몽골고원 북부 신석기 성분이 거의 유사한 비율이지만, 의외로 바누아투의 오스트랄로이드성분이 나온다. 성분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합민망합유적에서는 식량이 부족해지자 설치류 등을 먹기 시작하고, 설치류의 페스트에 감염되어 죽은, 당시 촌락 인구의 31내지 절반인 180명의 시신을 모아 처리한 흔적이 있다한다(朱永刚,吉平 <内蒙古哈民忙哈遗址房址内大批人骨遗骸死因 蠡测> 2016). 사망한 시신들의 골격을 재료로 사망당시  연령을 측정한 결과, 평균 26.8세라 한다. 이는 중국에서 역병으로 인해, 대량의 인구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고고학 유적인 묘자구(廟子溝) 유적 시신들의 사망 당시 연령 22세에 비해 높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아시기 면역력이 낮아서, 전염병등이 유행했을 , 유아들의 사망율이 높지만(묘자구유적에서 15 이하 사망비율 35%, 합민망합에서는 24%), 합민망합에서의 어린 세대는 전염병에 면역력이 어느 정도 있어서, 상대적으로 사망율이 낮고, 청장년세대가 전염병에 면역력이 약해서, 묘자구 유적의 사망연령보다 높았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남방에서 올라온 오스트랄로이드 성분이 많은 인구집단과 만나서, 이들 남방인구집단이 지니던 북방초원에서 드물던 병균으로 인해, 이들과의 혼혈으로 면역력을 어느 정도 가지기 시작한 어린 세대는 사망율이 다소 낮고, 청장년세대가 면역력이 약해 대량으로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다. 합민망합인들을 대량사망에 이르게 전염병으로 설치류에  의한 페스트를 드는 이유는, 유적에서 나온 동물뼈들의 분석한 결과, 토끼나 들쥐와 같은 소형의 설치류가 대형포유동물인 돼지나 등에 비해 월등히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석기 말기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북방지구에서, 종래의 맘모스 등의 번식력이 낮고, 개체수가 한정된 대형포유동물에 과도하게 의존하여, 인구집단 전체가 식량위기에 이르던 것이, 덫의 설치나 사냥도구의 발달로 날래서 잡긴 힘들지만, 번식이 빠르고, 개체 수가 월등히 많은 소형포유동물에까지 수렵의 범위를 넓혀서,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해 나간 점을 고려하면, 설치류 식단의 의존이 반드시 페스트 감염과 대량사망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합민망합인에게 존재하는 소량의 오스트랄로이드 성분이 합민망합문화의 초기부터 존재했는 아니면, 말기에야 나타났는 지를 자세히 조사하면, 대량 사망의 원인에 대해서, 보다 진전된 이해를 얻을 있을 것이다.   

 

홍산문화의 반랍산유적에서 나온 샘플들은 K=7 보면, 하가점 하층문화와 같은 대만 Hanben문화의 남방성분은 없지만, 황하유역 성분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온다. 반랍산 유적에서 나온 3개의 고인골 샘플 중에, 부계 하플로가 측정된 BLSM41 논문에서는 측정된 부계하플로는 O2a 나오지만, 하부의 하플로를 측정한 것에 따르면, M117 속한다고 한다. 이는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중국에서 홍산문화의 다른 대표적 유적인 우하량지구의 최고 등급 대묘에서 발굴한 유골의 부계가 M117이라는 것과도 부합한다.

 

현재까지 중국에서 측정된 고인골의 부계를 보면, M117 빈도가 가장 높은 것은 서부 청해성 제가문화 영역이고 측정된 5개의 고인골 부계 모두 M117이다. 또한 티벳지역의 고인골인 Chokhopani에서도 M117 나왔기 때문에, M117 섬서성과 하남성 중심의 앙소문화에서 기원해서, 확장했다는 의견이 주류이다. 이것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로서, 홍산문화에서 앙소문화의 대표적 유물인 채색토기가 출토되고, 채색토기들은 양식적으로 앙소문화에서 전파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홍산문화 샘플들이 K=7에서 황하유역 성분이 성분이 높은 것이 전적으로 앙소문화에서 외래인들의 영향이기보다는 지역에 홍산문화 이전의 흥륭와문화나 조보구 문화 시기부터 이미 오래 전에, 황하유역에서 와서 자리 잡았던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산동지역 고인골들 거의 9000 이전 Bianbian인에서부터 황하유역 성분이 높은 데서 있듯이, 15000 빙하기가 끝난 이후, 동아시아지역의 인구집단 형성은 주로 부계 하플로 N O 대표되는 농경문화를 습득한 집단이 서부에서 동부로 계속적으로 이주한 경향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가점 하층문화는 앞의 Treemix PCA그래프에서 언급했듯이, 황하유역 주민이 홍산문화의 쇠퇴 이후, 인구가 감소한 요하유역으로 이주하였던 것이며, 이들은 Austronesian인의 선조인 Hanben성분을 많이 가진 것을 , 황하 중상류지역이 아닌, 하남성 중심의 중원지역, 황하 중하류지역에서 이주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있다.

 

하가점상층문화인 용두산 유적에서는 종류의 샘플이 나오는 , 일반적인 하가점 상층문화인을 나타내는 샘플과 특별히 북방성분이 높은 특이형 Outlier 있다. 하가점 상층문화는 고고학적으로 Ning et al.2020 논문에 고인골 자료가 나온 서랍목륜하(西拉木倫河)유역의 용두산과 대포자유적을 중심으로 하는 용두산 유형과 요서 동부의 노합하(老哈河)유역의 남산근과 소흑석구유적을 중심으로 하는 남산근유형, 그리고 하북성지역 란하()유역의 동남구(東南溝)유형으로 나누는 , 남산근유형의 유적들은 한반도의 청동기문화와 관계가 깊은 비파형동검이 가장 많이 나온 십이대영자유적(중국학계는 십이대영자유형을 하가점상층문화의 갈래로, 한국학계는 십이대영자유형을 하가점상층문화와 독립하여, 요동의 청동기문화와 연관된 것으로 다루는 경향이 강하다) 가깝고, 또한 남산근유형에 속하는 여러 유적지에서 비파형동검이 출토된다.

 

시기적으로 용두산유형이 하가점상층문화의 1기로서 약간 앞서며, 서북부의 서랍목륜하유역의 용두산유형에서 남산근유형이 위치한 남동쪽으로 하가점상층문화가 점차 확산한 것으로 여겨진다(井中,< 夏家店上文化的分期源流> 2012). 따라서, 용두산유적은 한반도의 청동기문화와 관계가 깊다고 알려진 하가점상층문화에서 한반도와 비교적 관련이 옅은 지역의 유적이라 있다.

 

목축과 관련된 동물순장이 많고, 청동제 무기 등이 많이 출토되어 북방초원의 유목문화와 유사성이 강조되는 하가점 상층문화는, 비록 약간의 청동기가 출토되지만, 일반적으로 농경위주의 정착문화인 하가점하층문화와는 계승관계가 없다고 주장되지만, 위의 Admixture분석을 보면, 하가점 상층문화 용두산 유적 출토 고인골에서는 홍산문화와는 달리, 하가점하층문화의 이도정자유적 고인골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비율의 남방계의 Hanben요소가 나오므로, 일부분의 하가점하층문화인은 하가점상층문화의 원류로 추정하는 고태산문화나 위영자문화과의 혼합을 통해서, 생성된 것일 있다.

 

물론 앞서의 Treemix PCA분석 등에서 보듯, 하가점하층문화는 분명히, 요하유역의 다른 문화들과 달리, 황하유역과 강한 연관성을 지니고, 유전적 차이를 보이나, 이것이 하가점하층문화인들이 완전히 요하유역에서 소멸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보다는, 이들이 위영자문화나 하가점상층문화 등에서, 북방적인 요소가 강한 인구집단의 주도적인 영향아래 일부분이 흡수되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하가점 상층문화는 원류가 다양하다고 여러 고고학 연구자들에서 추정되는 , 분명한 것은 하가점 하층문화시기에 비해서, 다시 북방적인 요소가 강해졌다는 것인 , 이러한 점은 하가점상층문화의 outlier샘플이 8000 유민문화인보다 오히려 북방적인 요소가  많다는 것에서도 확인할 있다.

 

여기에서 다시 강조해야 것은, 고고학이 연구대상으로 하는 물질문화에서 나타나는 차이가 반드시 분자인류학의 대상인 인구집단간의 유전적 차이로 반영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반대의 현상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있는 , 분자인류학적으로 분명한 차이가 보이는 인구집단이 유사한 고고학 문화로 묶일 수도 있다. 최근에 나온 하버드대학 데이비드 라이히 연구팀의 카리브해 여러 섬들 사이의 토기의 사용유무나 유형분류를 중심으로 고대의 인구집단간 유전적 차이를 분석한 연구(Fernandes et al. 2020)에서, 토기 유형의 시대적 변화나 공간적 변이에 대응하는 인구집단간의 유전적 차이는 없고, 이러한 스타일의 변화는 문화전파나 유사한 유전적 구조를 지닌 인구집단의 이주나 교류로 설명될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토기의 스타일에 나타나는 변화에 따른 인구집단의 변화나 스타일의 미세한 차이로 한반도 문화의 원류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 토기유형의 차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한국 고고학계의 연구경향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연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