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와 M117-1) 덕수 이씨 모달
블로그 형식이 복잡한 문제를 토론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제가 올리는 포스팅에 대한 토론은 가급적
http://cafe.daum.net/molanthro  의 다음카페에서 진행했으면 합니다.

1)   덕수이씨 모달

 

M117임이 분명해 보이는 Y-STR타입 중에 백제인의 일본진출과 연관시켜서 생각해 볼 만한 것이 있어서, 제가 몇 년전에 이른바 백제모달이라고 명명한 Y-STR 타입이 있습니다. 마침, 그 때, 웹상에서 Y-STR을 검사한  덕수 이씨 한 분이 이 타입에해당되어서, 이 모달에 속한 다른 한국의샘플들은 성씨나 본관을 알 수 없기에, ‘덕수 이씨모달이라고도 불렀고, 백제를 대표하는 다른 Y-STR타입들도 향후에 발견될 수있기에, 잠정적으로 덕수 이씨모달이라고부르겠습니다. 아래는 측정된 출신 지역이알려진 샘플 가운데, 이 덕수이씨 Y-STR 모달이 나타난 인구집단과샘플들이고, 그 아래에 분포지역을 지도에표시해 보았습니다.

 

그림1) 덕수 이씨 모달의 분포


1) 덕수 이씨 모달로 추정되는 샘플들

 

그림1)지도에서 붉은색으로 표시된 점이 이 모달에 속하는 Y-STR타입 나타난 곳인 데, 이 모달이 백제와 연결되었으리라고 강하게 의심되는 이유는 한국 내 분포를 보면, 백제 전성기와 후기에 중심지역이었던서울,경기와 충청도지역에 집중적으로분포하고, 한국 내 나머지 지역에서는거의 발견되지 않고, 일본에서는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남쪽으로 오키나와에서부터, 북쪽으로 홋카이도에 이르기까지다양한 지역에서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다음과 같은 추정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한국에서는 백제 멸망 시에 소수의 인물만이 남아, 그 지역에서 계속 세거를 하며, 더 이상 활발한 확장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들이 백제 멸망 시에나 혹은 그 이전에 대규모로 일본에 이주하여, 오히려 일본에서는 왕족이나귀족과 같은 높은 지위를 여전히 유지하여, 그 유전자를 퍼트리기에 유리한 입장이 되어 전국적인 확장을 하였 것입니.

 

이러한 추정이 더욱 그럴듯하게 되는 이유로, 위의 지도에서 보듯, 중국 내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지만, 유독 백제왕가가 그 기원이라고 주장하는 옛부여의 영역인 현재의 중국 동북부지역에서 역시 적은 수이지만, 이 모달 유형을 발견할 수있습니다. M117 아래 CTS4652라는 하위하플로가 한반도에서직접적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대단히 낮고, 중국대륙의 북부 어딘가였을 것이므로, CTS4652 아래의 덕수이씨 모달도 이들 중국에서 나온 샘플들과 가까운 어디에선가 발생했을 거라 보는 것이 합리적이므로, 중국 동북부에서 한반도 방면으로진출했을 것입니다.

 

 

그림2) 덕수이씨 모달샘플들의 MDSPlot Rst

 

위의 Y-STR샘플들에 대한 MDS Plot을 보면, 푸른색의 일본 샘플들은 대체로 우상단에, 파란색의 한국샘플들은 좌하단방면으로 위치함을 알 수 있고, 붉은색의 중국 샘플들은 비록숫자가 적어서, 큰 의미를 두기 어려우나, 한국 샘플들에 가까운 쪽에위치합니다. 이로서도 덕수이씨 모달의중국 샘플들은 일본으로 바로 건너간 것이 아니라, 한국을 거쳐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의 Rst 거리표의 수치에서도 한국이 중국과 일본 중간 사이의 거리로서한국쪽 샘플은 중국쪽보다 일본쪽에 약간 거리가 가까운 데, 역시 큰 의미를 두기 어려우나, 중국쪽과 분리된 시기가 더멀기 때문에 아닌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 부여가 멸망하던 시대 약 1800년전에 먼저 분리되고, 그 뒤, 일본쪽 샘플과는 백제가 멸망하기 전인 약 1500년 전에 분리된 것에 기인한 것일 수 있습니다.

 

일본인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중국대륙에서 온 이주민의 영향을 설명할 때, 한반도는 아주 짧은 중간기착지로서나, 혹은 중국대륙에서 일본으로직행으로 이주가 이루어졌다고 설명하는 일이 많은 데, 위의 MDS plot이나 Rst거리에서 보여지듯, 중국대륙에서 일본으로의 인구집단의 이주는 급행열차를 탄 Express way가 아니라, 한반도가 중요한 매개로서, 한반도가 또 다른 중요한 시발점이었음을 보여 주는 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덕수이씨 모달이 발생지가 유력한 중국 대륙 북부에도 그 수가 한반도나 일본에 비해 오히려 드문이유로는 이들이 중국 북방지역의 잦은 전란이나 북방민족과의 한족간 혹은 북방민족들간의 정권교체 등으로 여기 남은 후손들은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거나, 백제의 왕가 선조라고 전해지는비류와 온조가 남하할 시, 혈혈단신으로 온 것이 아니라, 대규모로 집단을 이루어 남하해왔다고 했으므로, 현재의 중국 동북지역에만이들이 소수로 분포하는 것도 역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라 봅니다. 이러한 사실들과 역사서의 기술들을 결합해 보면, 아래의 지도와 같은 흐름으로 이 모달의 인물들이 <부여 è 백제 è 야마토>로 집단적으로 이주했을 것이고, 최종적으로 이 모달이 성공적으로확장한 곳은 그 본류가 되는 중국 동북부나 한반도가 아니라, 종착지인 일본지역이었을 것입니다.

 

 

그림2) 부여-백제-야마토로의 이동경로


 

물론, Y-STR표에 나온 요령성 몽골족과 흑룡강성 목단강지역 한족들을 Y-STR값들을 보면, DYS390 DYS635가 한국인 샘플들의 표준값과 비교했을 때, 각각 1씩 증가한 형태이므로, 이들이 원류가 아니라, 오히려, 한반도에서 후대에 역으로 흘러간 이들의 후손일 수도 있습니다. 고려시대 몽골제국 지배시기즈음에 한반도에서 몽골으로 끌려간 다음, 남은 이들이 몽골족이나 중국 한족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쉽게도, 측정된 Y-STR 수가 적고, Y-STR Step-wise mutation을 통하여, 하나씩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것이 모두 가능하므로, 어느 쪽이 원류하고 판단하기에는현재로서는 어렵습니다(몇몇 연구에서는, step-wisemutation이 증가하는 쪽으로의 변이가능성이 조금 높다고도 함). 만일 이들 샘플에 대한 Y-SNPFull sequencing이 이루어져, 하위 하플로 그룹이 발견되면, 그 하플로 그룹의 귀속여부로 판단하든지 아니면,  private mutation을 비교해서도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덕수 이씨 모달의 M117 하플로 그룹상의 위치에 대해서 Y-STR을 볼 때, 이 모달에 속한 것이 확실한 HGDP00749라는 일본인 샘플에 대해서, 얼마 전에 Y-FULL(https://www.yfull.com)이라는 전세계의 Y-하플로 그룹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와 분석을 하는 회사에서 Full-sequencing을 통해 밝혀낸결과를 올려 놓아서, 그 위치를 구체적으로 알수 있게 되었습니다. 먼저 HGDP00749 Y-STR값을 보면 아래와 같고 ,확실히 덕수 이씨 모달임을알 수 있습니다.

 

2) HGDP의 일본인 샘플 HGDP00749 Y-STR Y-Full에서의 위치

 

아래는 제가 Y-FULL Y-하플로 그룹에 대한 세계 각지의 여러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참여하여 만든 ISOGG(www.isogg.com) 라는 사이트에 나온 M117의 트리와 이 두 사이트에 아직 반영되지 않은 다른 최신의 결과들을 결합해서 만든 것입니다.

 

 

3) M117Phylogenetic Tree -2017 2월 현재

위의 새로이 갱신된 M117 하플로 그룹 트리에서 덕수 이씨 모달에 속하는 일본인 샘플 HGDP00749는 북방한족이나 한국, 일본 샘플이 많이 몰려 있는 F438이나 Y8389, CTS1017 등의 아래가아니라, 초기에 CDX 중국 운남성 따이족 샘플, 방글라데시 샘플들만 나와서, 남방계 분지인 줄 알았던 CTS4658의 한 분지인 CTS5308 아래로 나옵니다.


CTS5308을 좀 더 자세히 살펴 보면, CTS5308 아래 두 개의 하위 하플로 분지가 확정되어 있는데F14415아래로 각각 중국 운남성 시솽반나에 거주하는 따이족(동남아시아의 타이인과 거의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언어도 동일한 Tai-Kradai계통의 민족)의 HG0081과 북방한족을 대표하는 북경한족의 샘플중에서 나온  NA18540이 덕수 이씨 모달의 일본인 샘플 HGDP00749와 같이 하위의 분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Y-Full에 따르면 이 F14415아래 분지의 생성년대는 B.P.6000년 전, 확장년대는 B.P.5000년 전으로 되어 있으므로, 대략 신석기 중기나 후기부터 확장이 되기 시작했다고 추정됩니다. 또 하나의 분지로 흥미롭게도, 2016년 정충원씨 논문에 나온 샘플인 티벳고원의 청동기시대 고인골 샘플 셋(C1, S10, S35)이 S21320이라는 SNP가 양성으로 나타나는 분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림3) GeneticAffinities of TIB in the Context of Worldwide Populations


상염색체의 유전적 거리를 측정한 수치인 Fst를 막대길이로 나타내어, 길이가 짧을수록 중심의 Tibet가 거리가 가까운  집단[1]

 

티벳인들의 연원에 관해서,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현재 여러 분자인류학 연구에 의하면, 위의 그림에서 보듯, 동아시아 북부에 여러 인구집단들과 상염색체상으로 근접하고, mtDNA도 동아시아 북부의 여러인구집단의주요 하플로들이 이들에게 존재합니다. 고고학적으로도, 티벳고원의 북동쪽, , 중국 감숙성과 청해성 일원의마가요문화((馬家窯文化)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이 마가요문화는 하남성과섬서성 일대의 앙소문화(仰韶文化)의 일부 혹은 거기서 발전한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티벳고원으로 진입한 M117도 그 연원은 앙소문화와 관련이 있다고 보여지고, 이 앙소문화인의 일부는 서남쪽으로 티벳고원으로 가서 카락문화(卡诺文化)인이 되고나아가 인도 동부의 NagaAsem지역, 방글라데시, 혹은 사천성, 운남고원쪽으로 진출한 다음, 미얀마, 타이지역에 까지 퍼져 나갔다고 봅니다.

 

티벳어는 언어학계에서,Sino-Tibetan-Burman어군의 하나로 귀속되지만, 대부분 단음절로 별도의 문법소를지니지 않는 고립어적인 특징을 지닌 이 어군 소속의 다른 언어들과 달리, 문법적인 측면에서는 알타이어군과 가까운 한국어 및 일본어와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 어순이 주어+목적어+동사를 따르는 SOV이고, 격조사와 부조사가 발달해서, 한국어와 일본어와 같은 교착어적인성격을 지니고, 이 격조사와 부조사들로 문법적인기능을 표시하고, 의미를 명확히 하는 역할을담당하게 합니다


다른 한편, 앙소문화 본거지 부근이나 더 동쪽으로 나아간 이들은 후에, 용산문화(龍山文化)의 일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추정이 가능한 한가지 근거는 용산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지 중에 하나인 중국 서북부 산서성 陶寺유적에서 출토된 유골 4개중에 3개는 O3*, 나머지 하나는 O3e으로 측정되었는 데, O3e M117의 상위하플로인 M134를 가리키는 것으로 아쉽게도, 그 하위인 M117이나 F444가 측정되지 않아, 어느쪽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아직 발굴되거나, 측정되지 않은 유골 중에, M117도 있을 거라 봅니다.

 

용산문화 이후, M117집단의 발전방향에, 현재로서 고 DNA발굴의 도움을 받을 수 없지만, 현대의 M117의 분포로 볼 때, F438아래 여러 하위 하플로는 商왕조 및 그 후에 周왕조의 건립에 참여하여 현대 중국한족의 주류가 되었을것이고, 또 다른 일부는 융적(戎狄)이라 불리었던 상나라 및주나라 왕조와 대립하던 이들이 북방 초원의 여러 민족에도 합류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춘추전국시대에 화하족의 각 국가와 대립하던, 서쪽의 여러 민족을 융() , 북쪽의 여러 민족을 적()이라 하였다하지만, 이 명칭이 그들 자신의 자칭이 아니라, 화하족이 편찬한  <춘추>,<국어>,<좌전> 등에서 불리어졌던 타칭이기에,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종족을뜻하는 지 알기는 어렵습니다.  이 융적과의 전쟁은 西周로서는가장 큰 문제였는 데(“之大事,在祀” <좌전>), 융적과의 잦은 전쟁을 통해서, 성장한 서주는 싸우면서 친해진다는 말이 있듯이, 후대로 갈수록 서주와 융적간에는 잦은 혈통의 교환이 있었을 것입니다.

 

조선 세종 때 조선 창업의 정당성을 흥보하기 위해 만든 <용비어천가>에서 태조 이성계의 선조가 여진족이 사는 땅에 가서 살았던 것을 중국의 사적과 비교하면서, 서주를 세운 희()씨의 선조 중에 후직의 아들불줄()이 하나라의 정치가 혼란하자, 융적의 땅에 가서 살았다는 고사(‘不奔戎狄)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성계의 가계에 대해서, 위와 같은 문제를 들어, 오늘날에도, 이성계 가계는 여진족 출신 혹은 몽골족 출신이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성계의 선조보다 휠씬 오래전에, 역사적 기록들도 모호한 서주의 혈통에 대해서도, 융적기원설이 끓임없이 나오고 있고, 용산문화와 서주를 주도했다고 믿어지는 M117(혹은 그 하위의 하플로인 F5)이 서주가, 아니면 주변의 융적에서 기원했는 지는 또는 일부에서 주장하는 대로, 서주와 견융은 본래 혈통적으로는하나의 집단이고, 단지 문화적 관습에 따라구분한 것이므로, M117이 둘 다에서 이미 존재했는지는판단하기 쉽지 않은 문제로 보입니다. 아무튼 이 융적의 후예로 중에 후대에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한나라 때, 본격적으로 중원 한족과 대결을 벌인 흉노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by chojae | 2017/01/25 09:27 | 인류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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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유덕 at 2017/01/30 17:03
초재님 안녕하세요?

격조사 부조사표에 있는 티베트어 주격, 처소격 에 bred 는 '하다' 의미인 'byed' 의 오기가 분명해 보입니다. 끝에 붙어있는 'sgra' 는 우리말의 '소리'에 해당합니다. 즉 'byed sgra' 조사가 아니라 우리말의 '주격'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목적격과 처소격은 'la' 'ra' 'ru' 'na' 등을 같이 사용합니다. 마지막 시발에 적혀있는 'byunga kungas'은 '시발' '근원'의 '의미'인 ['byung khungs]의 오기로 보이고 그 자리에 들어가야할 조사는 'ne' 'le' 가 적당합니다. 티베트어가 구어체와 문어체가 약간 달리 사용되는면도 있으나 아래에는 문어체에서 사용되고 구어체에서 사용되지 않는것들은 일부 제외 했습니다.

정리하면
주격 '가' 티베트: is (이전음절 종성에 따라 gis, gyis, kyis, is 등-현대에는 뒤의 s는 묵음이나 예전에는 소리값 있었는듯)
주격 '는/은' 티베트: ni
목적격 '을/를' 티베트: 'la' 'ra' 'ru' 등
처소격 티베트: 'la' 'ra' ru' 등
동반격 '와' 티베트: 'ang' 'yang' 'dang' ('ang' 'yang' 'kyang' 이 우리말로 '~도' 로 번역 되기도 합니다만)
시발격 '부터' 티베트: 'ne' 'le'

이와 같습니다.


Commented by chojae at 2017/02/01 08:30
유덕님, 안녕하세요, 오래만입니다. 잘 지내고 계신지요? 지적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중국인의 블로그 글을 참고했는 데, 오류가 이렇게 많았군요^^
Commented by 혁신한국 at 2017/02/02 09:25
고고학 유물상으로 백제는 부여를 계승한 흔적이 나오지 않습니다. 고로 위에 그린 부여->백제->일본으로 이어지는 구도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한반도에서 부여를 계승한 흔적이 "명백하고 뚜렷하게"나오는 지역은 가야와 신라밖에 없으며, 그와 관련한 유물로서

순장고분, 삼엽문양, 안테나식 동검, 동복이 있습니다.

백제의 강토에서는 아직까지 순장고분을 비롯해 부여의 양식과 일치하는 어떤 유물도 나온적이 없으며, 백제 유물의 대부분은 중국 남조의 유물에서 기원하고 있음을 상기하고 이론을 펼치기 바랍니다.
Commented by chojae at 2017/02/13 14:59
님하고 여기서, 시간낭비하고 싶지 않지만, 제 입장을 말씀드리니 앞으로, 고고학 유물 몇 개 나온 것을 무슨 대단한 증거인양, 댓글을 다는 것을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고학유물은 문화전파에 의해 서로 다른 인구집단들도 공유할 수 있고, 가야에서 부여식 유물 뿐만 아니라, 왜식 유물, 중국 한 왕조의 유물들도 나오므로, 단순히 유물의 출현을 가지고, 그 인구 집단이 부여, 왜, 낙랑 등에서 출자했음을 증명하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가 없고, 또한 백제와 가야가 동시에 부여에서 출자했다고 해서, 논리적으로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한국 역사학자들이 애매하거나, 단편적인 사서 기록들에 대해서 몇 개의 고고학 유물만 나오면, 자신의 해석이 확실한 과학적 사실이라도 된 것처럼 완고해지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그리고, 백제에서 남조의 유물이 주로 나온 것은 백제가 가장 오랜 역사를 수도를 삼은 한성백제 시기가 아니라, 후기의 공주백제시기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분자인류학적 증거만이 인구집단의 이동과 유래에 대해 신뢰할만한 논거를 줄 수 있으며, 여기에 대한 증거가 없다면, 역사학자들이나 고고학자들도 앞으로는 인구집단의 유래나 이동, 변화 등에 대해, 고문헌기록이나 고고학적 유물 등 간접적인 추정자료만으로, 확정적인 진술을 하는 것을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Commented by 싯다르 at 2017/07/08 06:53
견융 구狗가 부여(bur늑대) 가락(狗개邪國)구야국 사카(석가) http://e-history.kz/en/publications/view/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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