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록국의 동아시아 체질인류학과 통찰-3

퉁구스인의 북방으로의 이민에 대해서, 사록국은 아마도 기원전 3천년 혹은 그보다 이른시기로 보았다. 그의 <북방퉁구스>에 실린 부록에서 기원전 3천년 경, 중국의 중원지구에는 원퉁구스인, 그 서쪽에는 한족(원문에는 Chinese), 그 동쪽 연해지구와 북아시아의 넓은 평원에는 고아시아인이 있었다. 중원이북과 북방의 고아시아인 사이에는 돌궐과 몽골 부족이 있었다. 기원전 1천년 이전에, 퉁구스인은 중원에서 완전히 밀려나서, 북쪽으로 이주하였고, 한족은 중원지역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고아시아인을 압박해서, 동부의 연해쪽으로 물러나도록 했다.  기원전 1천년경에는 한족은 다시 한번 확장을 크게 해서, 원래 장강이남 연해지구까지도 원거주지로 삼았던 고아시아인은 조선반도(일본)에만 남게 되었다.

위의 동아시아인 체질분류와 연관지어서 말하자면, 여기서의 한족은 기본적으로 A형, 고아시아인은 기본적으로 B형, 돌궐몽고인은 Δ형, 퉁구스인은 Γ형, 남방의 토착민은 E형이다. 西周 이전의 夏,商 시기(기원전 2100~1100년)의 원주민은 모두 퉁구스인의 조상으로, 기본적으로 Γ형이었다. 이것은 이전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다. 문제는 하와 상나라 시기 중원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어떤 민족이냐 하는 것인데, 아마도, 당시 중원지역에 거주하던 퉁구스의 조상들은 일부분은 한족에 동화되고, 일부분은 북쪽으로 이동한 뒤, 후에 그 일부분인 여진-만주족이라는 명칭으로 다시 중원지역으로 돌아 왔다. 적어도 이 가설은 사람들의 주목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 가설에서는 夏와 商나라의 주민과 西周의 주민이 서로 다르고, 또 그 동쪽의 연해에 거주했던 민족이 다르다는 것으로 이전에는 전혀 없었던 생각으로, 이것이 역사상 사실과 부합하는 지는 연구의 대상이다.
사록국이 말한, 고아시아인은 퉁구스인이 중국의 중원에 거주할 시기, 지금의 산동성과 동북3성 일대에 거주하였다. 역사적으로 이들은 夷라고 불려 졌다. 서주가 서부에서 중원으로 진입하여, 대략 기원 전 11세기 상나라의 통치를 종식시킨 이후,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여, 산동성 서부에 제나라와 노나라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정복자와 피정복자는 서로 다른 민족으로 그들 피정복자는 상나라 때에는 夷라고 불리어졌다. 보다 앞선 시기에는 이 東夷와 중원에 건립한 하와 상왕조 사이에는 연관이 있다. 하와 상의 문화는 산동성 지역의 용산문화를 받아 들였고, 이것은 동이의 문화였고, 당시에 비교적 발달한 문화였고, 동이의 문화를 흡수한 하와 상의 문화를 이후에 주나라가 계승하였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런 발달한 문화를 이룩한 동이는 사록국에 따르면, B형 위주의 고아시아인이다. 이들은 고대에 중국대륙의 연해 지역에 거주했을 뿐만 아니라, 항해에 능한 사람들이었고, 끓임없이 조선반도로 이주하였는 데, 지리적으로 해로를 제외하고는 대륙과 왕래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조선은 사록국이 보기에 전형적인 B형위주의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다. 이것은 고대 인구이동론의 중요한 논증이 된다.

사록국은 화동과 화남지역에 Γ형이 얼마나 분산되어 남아 있는 지에 대한 문제에서, 자료를 수집한 후 결론은, 안휘성과 강소성에 부분의 Γ형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특별히 태평천국 전쟁을 예를 들어, 원래 이 지역에 거주하던 인구의 사망률이 매우 높아서,  호북성과 하남성에서 온 이민이 빈 공간을 채웠는 데, 그 중에 아마도 Γ형과 Δ형이 있었다는 것이다. 서남지역의 소수민족 중에는 원래 중원에 살던 퉁구스계 민족이 섞여 있는 데, 이들이 산악지구로 가면서, 원래 체형이 보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by chojae | 2011/06/04 00:30 | 인류 | 덧글(27)
Commented by chojae at 2011/06/04 00:40
사록국의 가설을 소개한 이유를 내 블로그를 계속 관심을 가지고 본 분들은 금방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1. 만주족 등 퉁구스와 지리적 인접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어(일본어)와는 왜 언어에서 그렇게 많이 다른가? 2. 은상시대 동이는 현대 한국인과 관련이 있는가? 3. 하와 서주는 같은 민족인가 다른 민족인가? 등의 문제에 대해서, 사록국의 가설들이 시사하는 바가 많이 있다. 다른 분들에게도 탁월한 준거점이 될 수 있기를...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11/06/04 18:14
보면 볼 수록 M122와 M134는 확산 이동경로가 서로 달랐던 것 같습니다. 티벳인의 경우 M122가 거의 분포하지 않거나 정말 드문드문 발견되더군요. 티벳인의 O3는 압도적으로 M134와 M117 입니다. 반대로 동남아, 특히 필리핀의 경우, 대부분의 O3가 M122 입니다. 분포도에 있어서 M122의 경우 동남고 서북저 현상을 보이고, M134의 경우 서북고 동남저 현상을 보인다는 거죠. 또 M122의 경우 기타 다른 M175 하위 하플로, 특히 M119와 동반 이동하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반해, M134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두 하플로가 아주 초기부터 이동 확산경로를 달리 하다가 후에 서로 다시 만나게 된 걸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M122는 동남아나 중국남부에서 기원하여 바로 양자강 중,상류를 가로질러 화북지역으로 북상한 것으로 생각되고, 내몽골, 요서지역으로도 진출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반면에 M134는 중국 서남부에서 바로 북상하여 티벳고원, 화서지역에 자리잡고 M122가 화북지역을 장악한 뒤, 확산을 시작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M122가 요서, 내몽골까지 진출하는 바람에 C3집단이 한반도, 일본열도로 오지 못 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보면 C3집단을 중원에서 쫓아낸 집단은 화서지역의 M134가 아니라, 양자강을 가로질러 북상한 M122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입니다. 또 C3집단이 기존의 N과 Q계열 집단과 화북지역에서 동거한 것으로 본 사록국의 시각도 동의하기 어려워 지네요... N과 Q는 C3집단보다 유라시아 북쪽으로 퍼져, N은 서쪽으로 Q는 동쪽으로 확산된 모양새를 보입니다. 이는 오히려 N과 Q가 동서로 동거하다가 C3집단에게 쫓겨난 모양새가 아닐런지...
Commented by chojae at 2011/06/06 20:13
티벳인의 경우, M134와 M117이 균등하게 분포하는 것이 아니라, M117이 압도적이고, M134는 1~2%밖에 되지 않습니다. 유전자인류학의 비조인 Cavali Sporza와 Underhill이 참여한 유명한 연구 <The Himalayas as a Directional Barrier to Gene Flow 2006>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M134와 M117이 분포는 일정한 상관성을 보이나, 이들의 이동경로가 반드시 일치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M122에 관해서도, M122아래의 M7, JST002611등 역사가 오래 되거나, 대규모의 인구집단을 형성하는 많은 하위 하플로그룹이 있는 데, 이들을 묶어서 언급하기보다, 따로 언급하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11/06/09 01:16
음... 그렇군요. 티벳인의 O3는 M117이 그냥 압도적이군요. 그렇다면 초재님 말씀대로 M134와 M117을 묶어서 얘기하기 힘든 부분이 있겠습니다. M122도 그렇고, 얘기를 쉽게 풀어가려니 참... 어렵네요. ㅎㅎㅎ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11/06/09 01:31
Y-SNP 이름 바뀌는거 파악하는 것도 고역입니다. ㅎㅎㅎ 이거 예전 자료 가지고 있으면, 그 자료가 작성된 해부터 해마다 어떻게 바뀌었는지 확인해야 어떤 하플론지 알수가 있으니...-_- 특히 M122 하위 하플로들은 해마다 기초공사 새로 하는 느낌이네요.
Commented by chojae at 2011/06/17 16:27
해마다 기초공사가 새로 있지요. 골치아픈 일이지만, 동아시아 인구집단에 대한 충분한 샘플수가 모이기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봅니다. 듣자하니. 근자에 또 하플로 O tree에 큰 변화가 있을 듯합니다. dna-forum등에 가시면 정보가 있을 겁니다. O1과 O2가 하나로 거슬러 올라가는 원시 하플로타입이 이미 발견되었고, O3도 P203 아래에 있는 여러 하위 하플로의 위계도 조정되고, 새로운 하위 하플로도 다시 추가될 것으로 보입니다.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11/06/17 20:34
혹시 P201 말씀이신지... 초재님도 짖굳으시네요, 한참을 뒤적거려 2006년도까지 또 거슬러 올라가는 삽질을 ㅎㅎㅎ 저도 자주 써 먹는 수법이긴 합니다만.-_-

나중에 동아시아 O3 샘플이 충분히 쌓여 O3 하위 하플로 지도가 거의 완성되면, 중국 한족과 한국인의 O3는 그 하위 하플로 구성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일 가능성이 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M134가 한장어족 표지유전자라는 종래의 시각은 거의 용도폐기될 거 같다는...

어찌됐든 저는 한국인의 O3는 두가지 계통으로 이뤄져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거기다가, O2b와 C3가 또 다른 계통을 이뤄, 한민족은 크게 4가지 다른 계통이 남만주, 한반도에서 어울어져 오늘날 한국인의 선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 종자들의 연원을 따져보면 다 우월한 종자같다는 생각이 드네요.ㅎㅎㅎ
Commented by chojae at 2011/06/18 00:04
죄송합니다. 저도 늘 헷갈리네요. O1밑에 P203과 O3밑에 P201이...이번에 O Tree 전체가 바뀌면 또,F44 니 F444니 하면서 또 헷갈리는 것들이 많이 나올텐 데...(벌써 한숨이@@)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11/06/05 03:15
아~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있었네요...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서는, 아랫 글만 보고서는... ㅎㅎㅎ 사록국이 고아시아인이라 칭한 집단이 B형인 동이를 말하는 것이었군요. 저는 하플로그룹 N과 Q를 칭하는 것인 줄 알고 버럭했었습니다. ㅎㅎㅎ... -_- 음... 그렇다면 사록국의 얘기는 화동지역은 B형인 고아시아인, 화중은 Γ형인 퉁구스인, 화서는 A형인 화하족이 동거를 하다가 화서의 A형이 화중으로 진출하면서 샌드위치 되다가 북으로 도망간 것으로 본 것이군요.

흠... 고고학적으로 일리 있어 보입니다. 앙소문화가 성립된 뒤, 동쪽의 대문구문화가 서진하면서 앙소문화를 압도하여 용산문화가 성립된 것이라면, M134가 C3를 몰아내고 먼저 중원에 자리잡았다가, M122와 다시 만나게 된 걸로 볼 수 있겠습니다. 고아시아인이 동이이고 M122라면 이미 요서에서 자리잡아 있을 때 였으니, 퉁구스집단이 남만주, 한반도, 일본열도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겠습니다.

역시 대가의 얘기는 끝까지 들어봐야지, 안그러고 버럭했다간 망신만 당하는거 같습니다. ㅋㅋㅋ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11/06/05 03:40
아직 M117에 대한 자료도 많이 부족하고 최근에서야 조사되기 시작한 하플로타입이라 섵불리 판단내리기가 꺼림직 합니다만, 크게 세가지 부류의 M134가 존재하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습니다.

1. M134가 다수인 그룹(중국한족)

2. M134와 M117이 균형을 이룬 그룹(몽골, 한국, 일본)

3. M117이 다수인 그룹(티벳, 네팔)

저는 이게 꼭 proto M134로부터의 분리 순서를 보여주는 거 같거든요. 아직 M117의 개체수가 소수일 때 분리되어 나간 화하족, M117의 개체수가 M134와 균형을 이룬 뒤 분리되어 나간 융적, 그리고 M117이 다수가 된 티벳, 네팔인...

기존의 시각은 M134그룹은 화하족과 티벳버마족으로 2분화 된 것으로 봅니다만, 전 거기에 M134와 M117이 균형을 이룬 집단이 하나 더 추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들이 몽골, 만주, 한반도, 일본열도의 M134, M117의 선조라 생각됩니다.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11/06/06 02:25
도사유적에 만약에 C3 샘플이 나왔다면, 사록국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을 법도 한데... 저는 도사유적 때문에라도 하, 상, 주가 종족이 서로 달랐다는 주장에는 갸우뚱 해질 수 밖에 없네요.

용산문화의 주체가 이미 O3에 의해서 주도된 흔적이 있고, 용산문화의 성립이 대문구문화가 앙소문화를 압도하면서 형성된 것이라면, 아무래도 앙소문화가 M134, 대문구문화가 M122가 될 수 밖에 없지 않나 싶네요. 그렇다면 C3가 북방으로 쫓겨난 건 앙소문화 성립때로 시기가 거슬러 올라간단 얘기고, 앙소문화와 홍산문화의 성립시기가 대략 각각 기원전 5천년경이니, 아귀가 다 맞아 들어가거든요.

상 문명이 초재님 의견대로 홍산문화와 관련이 깊다면, 홍산문화가 남하하여 대문구문화를 낳고, 이 대문구문화가 서진하여 앙소문화를 흡수, 용산문화를 낳고 화하족을 낳은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단 말이죠.

하와 상, 주가 종족이 서로 달랐다면, 화하족(M122 주도 + M134), 상족(M122), 주(M134 주도 + M122) 정도의 차이가 아니었을런지...
Commented by chojae at 2011/06/06 09:25
우선 지나가다님이 관심을 가질 만한 소식을 하나 전해 드리겠습니다. 아마 복단대학에서 프랑스와 러시아 연구팀으로부터 입수한 Egyin gol 유적에서 나온 Y-STR 자료를 자기들이 보유한 데이타베이스와 비교해서 독자적으로 분석해서 Y-SNP 하플로 타입을 추정한 결과가 다음과 같습니다.
A조:
#25A:N1 혹은 O3-M117
#26:C3*
#27:C3* 혹은 C3d
#28:C3
#32A: STR 자료 부족, 추정할 수 없음
#36:D1a*

C조:이미 알려진 대로 모두 C3*에 속함
#46、47、50、52、53、54:C3*(star cluster와 가까운 유형)

B조:
#57、58:C3*
#65:R1a1a
#69、76:N1c1
#70、72、73:R1a1a
#81:N
#84.1:N1c1
#84bis:?(STR자료 적음, 대응하는 자료를 찾을 수 없음)
#88、94:?(특별히 대응하는 자료 찾을 수 없음)
#92:N1
#95:O3-M117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11/06/06 15:09
으~ 그러게, 제 말 맞다니깐요 ㅎㅎㅎㅎ

M134그룹은 분명 삼분화 과정을 거친게 분명합니다. 아직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그렇지, M134, M117그룹이 카라숙, 오르도스, 하가점상층문화 다 깊이 관여한 종족이라니깐요. ㅎㅎㅎ 이들 중, 분명 중앙아시아 청동기문화로부터 보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비파형동검문화를 만들어 낸 집단이 있었을 것이고, 이들이 한국남자 5명중 1명의 조상이란 말이죠.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11/06/06 15:38
아 Egiin gol유적이 기원전 3세기경에서 기원후 2세기경 사이의 유적이군요. 생각보다 M117이 적게 나왔습니다... 융적의 활동이 줄어들고 흉노가 발흥한 시점이니 그럴 수 있겠습니다. 더군다나 Egiin gol 유적이 몽골 서북부니 그런 현상이 좀 더 심하지 않을까 하네요.

번동아제님의 자료도 비슷한 현상을 보이더군요. 춘추 이전까지는 C3와 O3가 균형을 이루다가 춘추부터 전국말엽까지 O3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다가, 흉노가 발흥한 시점부터는 다시 C3와 O3가 균형을 이루는 모습을 보이거든요. Egiin gol 유적은 시기적으로 O3가 감소할 때이니 저런 현상을 보이는게 아닌가 합니다.
Commented by chojae at 2011/06/06 20:45
지나가다님의 최근 논의가 거의 M134와 M117에 집중되어 있는 데, 이들이 현대에 동아시아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여, 고대에도 그랬다고 볼 수 있는 증거는 많지 않습니다. 절강성의 양주문화와 강소성 신지리 유적에서 발굴된 유골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M119가 압도적입니다. 현재의 절강성 주민의 가장 다수를 이루는 하플로 타입도 역시 M119입니다. 대문구문화에서 나온 유골의 형질인류학적 분석은 이들이 오스트로네시안과 가장 가깝다는 것이었습니다.서북방에서 M134와 M117이 유입되기 이전 중원지역과 산동지역에서도 이들 越계 주민들이 일정부분을 차지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은상의 지배계급은 홍산문화와 관련이 있지만, 피지배계급에서는 JST002611이나 M119가 다수를 이루었을 거라 봅니다. 하와 서주가 동일한 계통이었는 지 아니었는지는 애매하지만, 서주는 M134나 M117이 동쪽으로 이동해와 이들 JST002611이나 M119(아마도 황제집단과 염제집단의 결합에 대한 신화는 이를 반영하는 것일지도...) 등과 융합해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chojae at 2011/06/06 20:53
Egjin Gol유적의 결과를 볼 때, M117와 M134가 몽골고원의 서북쪽에는 세력이 미치지 못했거나, 적어도 북흉노집단에서는 다수가 되지 못했다고 보여집니다. 남흉노와 후에 선비족이 이들과 관계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척발선비는 여러 문헌자료로 볼 때, 상당히 서구인적인 특색을 보이기에, R이나 Q계통이라면, 모용선비나 우문선비는 그 수려한 외모에 대한 찬사로 볼 때, 당시 지배적인 동아시아의 심미관에 부합했다는 것이고, 이는 오늘날 M134나 M117계통의 획기적인 확장과 관계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고래로 여자들은 꽃미남을 선호해 왔었다^^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11/06/06 23:07
ㅎㅎㅎ 아, 예 최근 비파형동검집단에 대해 필 좀 받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_-

일본에도 비파형동검, 세형동검집단이 건너간게 확인되는데, C3 분포가 너무 낮기에 몽골족에도 분포하는 M134, M117을 비파형동검집단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어와 일본어는 알타이어족에 속하거나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 거죠. 이게 양국의 Y-DNA 분포만 봐서는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거든요. 하지만 고대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몽골지역의 청동기문화 이동경로와 몽골지역 고인골 Y-DNA 분포도를 살펴보면 M134와 M117이 한일민족 형성에 있어서 알타이어와 비파형동검문화를 전달한 매개체 역활을 했음이 확실해 진다는 거죠.

뭐. 저야 뱉은 말을 학문적으로 책임져야 할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쉽게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 Y-DNA와 언어의 괴리, 이 부분이 제가 유전자인류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때 들었던 가장 큰 의문이었습니다. 저 실마리가 풀린 듯 하니 잠시 망나니처럼 날뗬네요.ㅎㅎㅎ 노여워 마시길 ㅎㅎㅎ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11/06/06 23:36
음... 만약에 홍산문화에서도 M119와 P31이 M122와 확인된다면, 대문구문화와 종족적 성격이 별 차이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요?

아! 그리고 인터넷에 절강성지역 지석묘 사진이 꽤나 많더군요. 보니까 상부가 돌출된 전형적인 북방식 지석묘입니다. 뭐 우리나라 북방식 지석묘와 판박이더군요. 중국쪽에서도 상한연대를 기원전 10세기경으로 보던데 말입니다, 한국, 중국 양국 모두 축조연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장품으로 상한연대를 측정한 것이더군요. 만약 저 거대 건축물들이 신석기 말기나 청동기 초기에 축조된 것들이고, 후대에 재활용된 것이라면, 지석묘의 실제 축조연대는 엄청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동지역 지석묘는 사진도 자료도 찾기 힘들어 잘 모르겠습니다만, 산동지역 지석묘 또한 북방식 지석묘라면, 대문구문화에서 확인되는 오스트로아시안적 혹은 오스트로네시안적 성격이 지석묘의 기원과도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한가지 확실한 건 지석묘집단은 홍산문화나 대문구문화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어느 순간 M122, M119, P31이 같이 이동하던 대열에서 빠져나와 요동으로 간 듯 합니다. 이들이 O2b로 변이되었을 수 있다는 전설이...-_-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11/06/07 23:29
초재님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하군요. 초재님은 고대, 그러니까 정확히는 하가점상층문화, 비파형동검문화 성립이전 요서, 요동,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언어를 사용했을거 같습니까? 저는 오늘날의 한국어, 일본어와는 거의 사돈의 팔촌격의 언어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사록국의 가설대로라면, 고아시아인 즉 동이족은 화동, 요서, 요동, 한반도에 걸쳐 분포하던 종족인데, 저는 이들의 언어는 오늘날의 중국어나 묘요계어, 혹은 오스트로아시안어와 대단히 닮지 않았을까 합니다.
Commented by chojae at 2011/06/08 14:41
동아시아 인류의 언어와 유전자의 괴리는 어찌 보면, 동아시아 인류사의 가장 큰 미스테리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동아시아의 여러 민족들간의 Y-SNP,mt-DNA,혹은 최근에 행해진 여러 상염색체의 분석을 보면, 유럽이나 중동 등의 지역과 비교해 볼 때, 그 지리적 크기와 인구 규모면에서 휠씬 유라시아 서반구보다 휠씬 큼에도 불구하고, 인구집단간의 유전자상 차이는 적습니다. 그런데, 왜 이러한 유전자상의 근접함에도 불구하고, 사용되는 언어에서는 인도-유럽어족, 혹은 셈어족 등으로 대체로 통일되는 유라시아 서반구와 다르게, 동아시아에는 그렇게 많은 다른 어족들로 분화되었는가? 이것은 제가 유전자인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주요한 계기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언어쪽에도 좀 더 많은 포스팅을 해서, 이 문제에 대해 같이 토론하는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합니다.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11/06/08 21:02
기대하겠습니다. 과연 무슨 내용일지... ㅎㅎㅎ

예전에 제가 유전자인류학에 대해서 완전 무지할 때는 동아시아를 알타이어족과 한장어족으로 2분화해서 봤었습니다. 시베리아, 몽골, 만주, 한반도, 일본열도는 기마민족인 알타이어족의 후손, 그 이남은 농경민족인 한장어족, 이렇게 말입니다. 그런데 유전자 인류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고고학도 배우게 되면서 전혀 저런 구분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때 제가 느꼈던 점은, '아! 내가 열라 무식했구나~'였습니다.-_-

요즘도 인터넷에서 저런 어설픈 지식들이 떠돌기는 합니다만,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도퇴되어 가리라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저는 비파형동검집단이 도래하기 이전의 고대 만주, 한반도 원주민의 언어는 결단코 알타이어나 그와 비슷한 언어도 아니었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M175의 하위 하플로들이 당도하기전 한반도의 토착 Y-DNA가 C3나 N, Q가 아닌 이상, 한반도의 토착민들도 알타이어족이나 그와 비슷한 어족이 아니었고, 이후 당도한 M175 하위 하플로들도 그 이동경로와 정착과정을 생각해볼때 결코 알타이어족이었을 수가 없구요.

그래서 전 몽골고원에서 알타어족화 되어버린 M134, M117그룹이 극동지역으로 비파형동검문화와 알타이어를 전파 확산시켜 오늘날 한일민족의 원형을 만든 시조집단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기원전 10세 ~ 4세기까지 요서남부, 남만주, 한반도가 각기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하나의 거대한 단일한 문화권으로 통일되어 가는 현상은 고고학적으로 충분히 확인되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11/06/13 01:38
하가점하층문화가 소멸하면서 그 주민들은 어디로 갔느냐... 하는 의문이 자꾸 듭니다. 초재님께서 주장하시는 바도 그렇고, 번동아제님의 자료에서도 홍산-소하연-하가점하층문화의 유골과 한국인, 일본인, 조선족의 유전적 유사성은 자꾸 증명이 되어가는 중이거든요. 그러면 분명히 하가점하층문화가 소멸하면서, 그 문화가 요동으로 이동한 흔적이 발견이 되어야 되는데, 이게 증명되기 힘듭니다.

그래서 요즘 자꾸 드는 생각이 말입니다, 요동으로 이동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중국으로 간 것도 아니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단 얘기 아니냐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더군요. 그럼 요서에서 하가점상층문화나 비파형동검문화를 제외하고 하가점하층문화인의 후예들이 있을 법한 곳은 어디인가 하고 보면, 고죽국 자리 말고는 딴데 갔다 붙일데가 없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보면 기존에 하가점하층문화가 있던 지역을 남북으로 나눠보면, 북으로는 하가점상층문화와 비파형동검문화, 남으로는 발해만을 따라 동서로 길죽하게 고죽국이 자리잡고 있었을 법 하거든요. 더군다나 하가점하층문화가 북방기마민족의 침입?에 의해 소멸되는 시점과 상나라의 건국시점이 묘하게도 일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고죽국은 상나라의 제후국이었죠. 이게 초재님이 주장하시는 바 대로 상민족이 홍산-소하연-하가점하층문화인과 관련이 있는 종족이라면,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거든요. 중원에서 상나라가 건국되고, 동족인 하가점하층문화인이 북방기마민족의 침략으로 패하여 상나라에 복속된 모습 같은게 말입니다.

그리고는 고죽국은 사록국의 가설대로라면 종족이 다른 주나라에 복속되지 않고, 독자노선을 유지하다 산융에 귀복하여 주나라 제후국인 연과 싸우다가 제환공에 의해 멸망하여 그 유민은 비파형동검세력에게 완전히 흡수되어 버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는 정말 중요한게 말입니다. 이리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고조선이 태어났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군사적으로는 비파형동검집단은 몽골고원에서 뛰어놀며 껌 좀 씹어댔던 무리같으니 당연히 고죽국보다 우위였고, 산융의 왼팔격이었을거 같습니다. 반면에 고죽국은 은나라의 문화와 제도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죠. 이게 조선의 탄생을 이해하는데 너무나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시겠지만, 서단산문화 또한 비파형동검문화입니다. 서단산문화의 지표가 비파형동검, 석관묘, 미송리형토기입니다. 그 남쪽으로 가야 석관묘 대신에 지석묘가 나오구요. 분명 비파형동검이라는 정치적 상징물이 남만주와 한반도를 덮어버렸는데도 하나의 정치체가 다스린 것으로 보이질 않습니다. 저는 예맥, 조선, 세형동검세력 다 따로 노는 것으로 보이거든요. 특히 예맥 즉 부여지역은 분명 단일한 문화가 형성되었는데도, 하나의 군장이 다스린 거대국가가 만들어지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게 바로 비파형동검집단이 고죽국유민과 하이브리드화 되기전 그들의 유목민적인 정치체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냥 단일한 문화의 여러 소국가 연대 비슷한 체제... 가야같이 말이죠.

하지만, 고죽국의 유민을 통해서 단일한 거대정치체를 만드는 체제와 법을 비파형동검집단이 도입했을 가능성이 크고, 朝鮮이라는 세련된 국호도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고죽국이 멸망하기 전, 비파형동검문화의 확산과 그 이후의 확산은 그 성격과 내용에서 아주 큰 차이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단 얘기죠.

이 비파형동검집단과 고죽국유민의 결합이 오늘날 한국인 O3의 근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M134계열 O3(비파형동검집단), 다른 하나는 비 M134계열 O3(고죽국유민), 이렇게 말이죠.

그러고 보면, 한국인의 O3는 정말 중국 한족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아주 비 중국적인 O3입니다. ㅎㅎㅎ
Commented by chojae at 2011/06/14 01:07
하가점 하층 문화가 소멸한 원인은 요즘 대부분의 연구들이 말하듯이, 기후변화로 인해서 요서지역이 더이상 반농반목의 경제상태를 지탱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일것입니다. 이들이 요동지역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요동지역에 남겨진 묘제등을 통해서 증명한 논문들도 중국이 나와 있습니다<红山文化积石冢与辽东半岛石墓文化-徐子峰 2006>. 요동지역뿐만 아니라, 더 동쪽의 한반도로 혹은 서남방향으로 하북이나 하남지역으로 가서, 은상문화를 창조했을 가능성도 큽니다. 고죽국에 대해서는 무슨 고고학적 자료나 유전자인류학으로 추적할 수 있는 자료들이 많이 남아 있으면 도움이 될텐데...현재까지 저는 그런 자료를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M134와 M117이 하가점 상층 문화를 이룩한 유목경제 위주의 산융계열인지, 아니면 홍산문화를 이룩한 집단이었는 지는 아직 확신을 못하겠습니다. 홍산문화 유골에 대한 Y-SNP자료가 나오고, M134와 M117에 대한 더 세분화된 하위 하플로 혹은 STR 유형별 분석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11/06/14 07:19
기존 요서지역의 토광묘가 요동으로 퍼져 나간게 맞긴 하지만... 아직은 증거 불충분 수준인걸로 압니다.-_- 부장품이라던가, 나머지 조합이 맞지 않는건지...

중국 사서를 보면 고조선이나 고구려가 고죽국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암시하는 구절이 여럿 있습니다. 고죽국의 유적들 위치를 조합해보면, 북경근방에서 요하이서까지 동서로 길죽하게 요서남부의 발해만 일대를 차지하고 있었음이 확인됩니다. 언제 고죽국이 성립되었는지, 그 종족적 구성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으나, 하가점하층문화 유민이 마땅히 갈만한 곳을 찾기가 영~ ㅎㅎㅎ

십이대영자 유형의 출현은 비파형동검집단이 고죽국 코 앞에서, 고죽국을 접수하며 그 세력을 확장해 나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환공의 북벌은 비파형동검집단에게 코 안풀고 고죽국을 접수하게 끔 해준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게 조선의 탄생이라는 믿음이...ㅎㅎㅎ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11/06/14 07:28
비파형동검문화는 결코 기존 하가점하층문화집단에 의해서 이룩된 걸로 보기 힘듭니다. 고고학자들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하가점상층문화가 오르도스문화의 연장선이라면 비파형동검문화는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청동기문화의 연장선입니다. 즉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청동기문화의 영향을 강력히 받아 탄생한 오르도스문화보다도 더 오리지날하게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청동기문화적 특색을 보여주는 것이 비파형동검문화라는 것입니다. 이런 문화가 과연 하가점하층문화의 자생적 발전으로 혹은 하가점상층문화라는 벽을 두고 문화수용으로 이룩될 수 있었을까요? 저는 힘들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조셍진 at 2011/06/17 20:33
한국인들은 동남아계통 입니다. 한국인은 남방중국인과 베트남인과 말레시아인과 관계가 있습니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는 통구스계 민족 입니다... 한국인하고 관계가 없습니다. 한국인은 역사 왜곡 하지말아주세요. . 부탁합니다 . .ㅠ.ㅠ . . 위만조선 당시 남한은 삼한시대 입니다.. 중국 대륙은 진나라가 대륙을 통일 했을때 입니다.삼한중에 (辰韓) 진한은 <漢서> 기록에 진한은 옛 (秦)에서 왔다. 진나라가 한나라에게 망하자 (秦) 진나라 유민들이 (辰) 진한으로 들어와 (辰韓) 진한땅에서 살았다. 이러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록을 볼때... 진한은 진나라인들이고..변한도 진나라인들로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마한과 진한은 문화도 풍습도 언어도 틀렸습니다.(馬韓) 마한은 위만조선계통인들이 세워진것이고. 후에 북방계 이민족 고구려 백제가 한반도로 쳐들어와 남방계한국인들을 압박했습니다 ... 확실히 다릅니다. 보세요.. 한나라 당시 한반도는 삼한시대였고 북쪽은 고구려가 있었습니다.. 평양쪽은 이미 한나라가 설치한 한사군이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 위만조선 당시 남한은 진국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북쪽은 위만조선이 있었습니다. 진국이 한나라와 교류를 할려고 하자..위만이 방해했습니다.. 같은민쪽끼리 왜 방해르 합니까? w w w 그리고 한국인은 백제와 고구려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삼한시대 북쪽에는 이미 고구려가 세워졌고. 고구려가 한사군을 멸망시킵니다.. 고구려 주몽의 아내 소서노가 아들과 유민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이동해 삼한중에 마한을 멸망시켜 백제를 건국했다고 삼국사기에 이렇게 기록하고있습니다. 그렇다면. 말갈족인 통구스계 고조선 고구려 백제인들이 마한을 정복하고 남한에 C3 북방계 유전자를 뿌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확실히 한국인은 신라계통의 O2b유전자 입니다.. 한국인은 남방계 입니다.. 북방계 통구스민족이 아닙니다. 한국인은 몽골로이드 말레이시아계종 입니다.. 한국인은 고조선 부여 백제 고구려 발해하고 관계가 없습니다....한국인 역사는 신라 가야 입니다.. 한국인은 통구스민족이 아닙니다.. 한국인은 몽골로이드 말레시아계종이고 중국남방계통 입니다.. 한국인은 북방계 고구려 백제인들에게 지배를 당해 북방문화를이어간것 뿐입니다.. 한국인은 북방계 노예 들입니다.. 한국인 역사는 신라-고려-조선 입니다.. 발해는 말갈족이 세웠습니다.. 말갈족은 여진족으로 불려오다가 청나라때 만주족으로 불렸습니다..지금은 만주족은 중국의 소수민족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발해는 중국의 역사가 됩니다.... 다시 말합니다. 한국인 역사는 신라 - 고려 - 조선 - 대한민국 뿐 입니다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11/06/17 21:26
O2b를 남방계 유전자 지표로 보고 동남아니 뭐니 하는 걸로 봐서, 일본인은 아니시구만. 조센진이니 WWW니 일본사람 흉내 내볼려는 화교거나 한국말 좀 하는 짱깨님이시구만. ㅋㅋㅋ 한국인의 형성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고, 동남아민족도 아니고 북방기마민족도 아니요. 무식하면 가만 있던가, 아님 괜히 나서서 자국 망신이나 시켜대지 마시오. 한족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뭔 줄 아쇼? 무식한 것이오. 그래서 난 댁들이 무섭지를 않소. 무지몽매한 아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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