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빈의 한국어 원시 시베리아어 귀속론 비판 -1

보빈의 한국어 원시시베리아어 귀속론 비판


-언어유형론과 분자인류학 상염색체 분석을 중심으로

  

분자인류학 발전이 진전됨에 따라역사비교언어학의 여러 문제들이 해결을 보고 있고이러한 흐름에 맞추어동아시아 역사비교언어학의 난제인 한국어와 일본어의 귀속에 관한 문제도 분자인류학 연구성과에 맞추어 다시 조망할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이번글에서는 한국어의 귀속을 분자인류학의 연구성과에 비추어전면적으로 새롭게 검토하기 보다는일단 현재 한국어-일본어 계통론을 연구하는 서구의 학자들 가운데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알렉산더 보빈의 한국어 원시시베리아어론( < Korean as a Paleosiberian language> 2006) 대해  가지  비판적인 논의를 보이고분자인류학적 분석결과를 기반으로앞으로 한국어에 대한 역사비교언어학적 연구가 나아가야  방향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카페에 이전에 수비님이 보빈의 견해를 요령있게  요약해 주셨기에(http://cafe.daum.net/molanthro/I4r8/90), 보빈의 견해를 상세히 소개하기보다는 그의 논지  대표적인 것의 문제점을 짚어 보고제가 최근에  분자인류학적 분석과의 관련을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수비님이 언급했듯이보빈은 한국어가 유형론적으로 원시시베리아어에 속한다고 단정하기 보다는 그가 주요하게 논쟁대상으로 삼는 스타로스틴 등이 주장하는 한국어가 알타이어계에 속한다는 가설에 대한 일종의 반증으로서유형론적으로 한국어는 알타이어계보다는 차라리 원시시베리아어계에  가깝다고   있고알타이어계설을 자동적으로 폐기될  있다는 입장으로 보이고현재그의 한국어와 일본어에 대한 입장도 2006년과  다른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논지를 전개하기 위해서는상대 입장이 분명하다고 가정하고그에 대립하는 입론을 제시하는 편이 각각의 논지를 명확히하고읽는 이가 이해하기에도 좋기 때문에보빈의 글이 한국어의 원시시베리아어계 귀속을 주장하고그의 논거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1음운대립(Phonological opposition)

 

그의 첫번째 논거로서 한국어는 무성폐쇄음과 유성마찰음의 음운대립이 주가 되는 이는 축치(Chukchi), 코리악(Koryak), 에스키모-알류트(Eskimo-Aleut), 유카기르(Yukaghir), 니브히(Nivkh)  원시시베리아계 (Paleo-Siberian) 주로 보이는 것으로알타이어계의 유기폐쇄음과 유성폐쇄음 (혹은 해석에 따라서 무기폐쇄음과 유기폐쇄음) 대립과는 다른 것이라고 합니다.

 

현대한국어의 음운대립으로 일반적으로 유기음과 무기음 사이의 대립을 가장 보편적으로 보는 보빈은 유성모음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무성무기음의 유성음화를 토대로 위와 같은 대립을 상정한 것으로 보이는데평음경음격음의 3자대립을 부차적으로 놓는분계선 만큼이나이러한 분절도 자의적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보빈의 논지 전개가 정석적이지 않은 다른 이유로,  < Korean as a Paleo-Siberian language>라는 글은 2006년에 나왔는 때는 이미 보빈이 소련에서 연구하던 시절자신이 이전에 견지하던 알타이어계의 기원적 동일성을 폐기하고알타이계의존립 자체조차 문제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한국어유형론을 위해서자신은 부정하지만그걸 견지하고 있는 상대편의 논지를 깨뜨리기 위해음운론적 대립에 대한 알타이어계의 동일성을 거론한다면동시에실제적으로도 존재하고자신도 이미  존재를 알고있는 알타이어계 내부에서 음운론적 대립도 불일치한다는 사실도 함께 거론했어야 균형있는 시각에서 문제를   있지 않아 봅니다.

 

예를 들어서알타이어계를 구성하는 투크크어몽골어퉁구스어  사이에 음운론적 대립이 일치하지 않고남퉁구스어를 대표하는 만주어는 한국어에서 음운대립을 무기음과 유기음의 대립을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한다면그와 유사하게유기음과 무기음의 대립이 주요한 것임을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Manchu_language참조). 그러므로무엇을 주요한 것이고 부차적인 것인지를 삼는 기준에 따라 혹은 어계 내부의 다양한 언어들 어떠한 언어와의 비교이냐에 따라음운론적 대립의 유사함 혹은 차이가 달라지게 됩니다.

 

2) 모음 사이의 유성음화(Intervocalic voicing)

 

보빈이 두번째로 논거로 내세운 것은 알타이어계의 언어들과 달리한국어에서는 아이누어와 니브흐어와 마찬가지로모음 사이에서 무성폐쇄음이 유성음으로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논거는 매우 짧게 서술되는 세계의 많은 언어들예를 들어영어에서의 t 같은 치경음이 유성모음 사이에서 fatty[færi], data [dæra]  같이 유성음화하는 현상이 관찰되고동일한 로만스어계 내에서 스페인어에서 프랑스어보다 이런 경향이  강하게 나옵니다.

 

모음사이의 유성음화 Intervocalic voicing 특정 언어에서만 발생하는 특수한 언어학적 혁신이 아니라연음화(lenition)라는 보편적 음운현상의 일종으로서 조건에 부합하면어떤 언어에서든 발생할  있고언어에 따라서발생하는 강도나 형태가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때문에 현상으로 특정 어군에의 귀속을 논하려면특정어군에서 발현하는빈도나 형태가  기원적 동일성을 가진다고 인정할  있을 만큼충분히 구체적이어야 하므로발생유무만으로는 별다른 논거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므로굳이 원시시베리아어의 속하는지 예로서 적절성이 논란이 되는 아이누어(원시시베리아어가 어떤 공통된 기원을 가진다거나명확한 경계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일반적으로 아이누어는 원시 시베리아어로 분류되지 않는다) 니브흐어만에서  현상의발생만으로 원시시베리아와 한국어를 관련지을 논거가 되기 어렵습니다또한그가 이러한 변화가 없다고 하는 알타이어계의 석백어나 만주어에도 유성모음 사이의 자음의 유성음화가 나타내는 예가 아래와 같이 나옵니다.


《满-通古斯诸语比较研究》-朝克 1997 P.46




이어지는 내용
by chojae | 2017/01/27 23:47 | 언어 | 트랙백 | 덧글(0)
백제와 M117-3) 백제 담로

3)  백제담로와 M117

 

백제의 담로에 대해서 <양서> <양직공도>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치소가 있는 성을 고마라 하고, 읍을 담로라 하는 데, 중국의 군현과 같은 말이다. 그 나라에는 22담로가 있는 데, 각각 모두 자제종족에게 분거하게 했다라고 되고 있어, 백제가 지방을 통치하기 위한 행정조직을 일컫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백제가 한반도의  서남부에만 담로를 두었느냐 아니면, 한반도 밖의 중국이나, 일본, 혹은 다른 곳에도 해외 식민지 형태로 운영하는 담로를두었느냐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논란의 중심이 되는 인물은 흑치상지(黑齒常之)입니다. 1929년에 알려진 흑치상지의 묘비명에 의하면, 흑치상지는 자는 항원이며, 원래 부여씨였으나,흑치라는 곳에 분봉을 받아서, 자손이 흑치를 성으로 하였다고 나옵니다(字恒元,其先出自扶余氏,封于黑齿,子孙因以为氏焉). 이 흑치가 어디인가를 놓고, 논쟁이 있어 왔습니다.흑치의 소재지를 확정한다면, 백제가 최치원이 언급한 대로, 북위군을 물리치고,백만강군으로 오월을 위협했고 해외 각 지역에 부용국을거느리던 해상강국이었는 지, 아니면, 야마토 조정에 늘상 왕자를 볼모로 바치면서, 원군을 요청하는 약소국이었는 지, 칠지도가 진상품이었는 지 아니면, 하사품이었는 지 등의 백제의 위상에 대한 서로 다른해석을 어떤 방향으로 해야할 지에 대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흑치의 소재에 대해 널리 알려진 몇 가지 견해는 1) 흑치는 한국어식 지명을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으로, 흑은 검은’, 치는 를 로서, 실제로는 검은내 혹은 검은물을 백제의 今勿縣, 오늘날의 충청남도 예산군 혹은 당진시 방면으로 비정합니다. 이 견해에 대해 의문인 것은 한자를 훈차할 때, 일반적으로 음만 아니라,뜻도 살려서 하는 데, ‘검은물이면 왜 내川와 같은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음도 가깝지 않고, 지명의 의미도 살리지 못하는 齒를 사용했을까입니다. 이 견해는 한반도 내에서 흑치라는 지명에 상응하는 것을 찾아 볼려고 하니, 억지로 끼워 맞춘 것에 가깝게 보입니다.

 

2)번째는 흑치는 검게 이를 물들이는 습속을 지닌 사람들이 사는 지방을 나타난 것으로, 흑치인들이 사는 곳에 대해, <山海經>, <呂氏春秋>, <楚辭> 등 춘추전국시대 편찬된 서적들도 기록을 남겼으나 진술이모호하여 서로 일치점을 찾기 어려우며,흑치국을 찾아가는 구체적인 경로와 위치를 비교적 상세하게기록한 것은 <후한서> 동이열전에 나온 기록입니다. ‘女王南四千里至朱儒,人朱儒南行船一年,至、黑齿国,使驿于此여왕 비미호가 통치하는 왜국으로부터 남쪽으로 사천리를 가면 주유국(난장이들이 사는 나라)에 이르고, 주유국에서 다시 동남으로 배를 타고, 1년을 가면, 나국과 흑치국에 이른다고 되어 있습니다. <양서>에도 이와 유사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其南有侏儒國人長三四尺又南黑齒國裸國去倭四千餘裏船行可一年至). 왜국에서 남쪽으로 가면 나오는 나국을 현재의 대만으로, 또 다시 남쪽으로 가면 필리핀이 있고, 필리핀 원주민들이 이를 검게 칠하는 풍속이 있으므로, 흑치국을 필리핀에 비정하거나, 혹은 필리핀이 너무 멀리 있고, 대만원주민도 이를 검게 칠하는 습속이 있었기에 흑치국이대만을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3) 번째로는 중국 서남부의 광서장족자치구에 백제허(百濟墟)라는 지명을 가진 곳이 있고, 이 곳 사람들이 빈랑이라는 열대과일을 계속 씹어서 이빨이 검게 되기에, 여기가 흑치라는 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설은 후한서나 양서와 기록된 바와 같이, 현재의 광서장족자치구가 왜국에서 항해해서 가는 곳이아니라 중원에서 내륙을 통해 가는 곳이고, 이가 검게 되는 풍속은 여기 말고도 운남성 등의 다른민족들도 많이 있기에, 백제허라는 지명이 정말 백제와 관계 있는지, 우연히 비슷한 음을 음차한 것에서 나온 것인지를 밝히지 못한다면, 그다지 설득력이 있는 견해로 보이지 않습니다.

 

4)번째로는 흑치국은 바로 일본을 가리킨다는 견해입니다. 일본, , 왜국은 백제와 교류가 활발하고, 그 당시, 일본열도에 백제가 담로를 두었을 가능성도 있거니와 일본에서도 역시 이를 검게 물들이는 풍속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기에, 가능한 후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흑치가 일본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 이상, 일본 곳곳에 이미 한자식의 지명이 있는 데, 굳이 흑치라는 지명을 사용했을까하는 의문이 있고, 이 묘비명을 쓴 당왕조 시대 중국인들도 일본을 왜국이라고 알고 있고, 당왕조시대 일본을 흑치라 부른 예가 없고, 무엇보다도 <후한서> <양서>의 흑치국에 대한 묘사와 부합하지 않기에, 이 가설도 적합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결국, 2)번째 필리핀이나 대만이 흑치라면, 역사서의 묘사에 가장 가까워 보이는 데, 백제가 정말 필리핀이나 대만으로까지 항해를 해서, 그것도 식민지로 삼을 만큼 해군력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른 역사적 사례와 비교를 해보자면, 제레드 다이아몬드의<문명의 붕괴>에 나온 이스터섬의 사례입니다. 백제가 멸망하는 시기와 비슷한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전 동태평양의 가장 외딴 곳에 위치한 이스터섬을 마지막으로태평양 동쪽 끝으로의 폴리네시아인의 이주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림4) 폴리네시아인들의 태평양 각지로의 이주 방향 및 시기


(http://www.teara.govt.nz/en/map/1772/the-direction-and-timing-of-settlement)



이스터섬은 태평양의 여러 섬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있는 데, 폴리네시아인들이 이스터섬에 도달하기 전에 시발점으로 삼은, 이스터섬에서 가장 가까운 인간이 거주하는 섬인 피트케른섬(Pitcairn island) 2,075킬로미터 떨어져 있다고 합니다. 국가적인 조직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유라시아대륙에서 동시기 발전된 다른 기술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거의 원시적인 항해기술에 의존한 폴리네시아인들이 2000킬로미터 떨어진 미지의 섬으로 해양정복을 완성할 수 있었다면, 백제인들이 의지만 있었다면, 일본, 오키나와, 대만 등을 징검다리로서,필리핀까지의 항해를 감행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은아니라고 봅니다.

 

문제는 이러한 가능성이 정말 현실화되었는 지, 현실화되었다면 그 증거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입니다. 필리핀이나 대만에서 백제의 담로라는 것을 증명해 낼 수 있는 고고학 유물, 예를 들면, 백제 담로로 여겨지는 지역에 나온 금동신발 같은 것이 나오거나, 필리핀이나 대만의 어떤 고분을 발굴했는 데, 현지 토착인이 아닌 백제인과 같은 형질인류학적 혹은유전학적인 특징을 지니는  인골이 발굴되고, 그가 백제의 지방 통치자급이 지니는 유물을 곁에 두고 있었다면, 이 문제는 거의 이견이 없이 해결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 분자인류학적으로어떤 방법으로 이 문제를 탐색해 볼 방법이 없을까요?

 

현대의 북아메리카 인디언이나 남아메리카 인디오, 오스트레일리아의 아보리진들 의 부계 하플로그룹을 조사해 보면, 내륙의 깊숙한 오지에 자리잡은 집단에서까지, 서유라시아 계통의 부계 하플로그룹인 R1b, R1a, J1, I1b, G, E1b 등이 적게는  10% 많게는 60% 정도까지 나오는 반면, 모계 mtDNA 하플로그룹은 거의 현지 토착인의 것입니다. 이러한 부계와 모계의 비대칭성은 차가운 열대에 남은 뜨거운 슬픔의 흔적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식민주의의 영향이 어디에, 어느 정도까지 미쳤는 지를 알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만일 현대 필리핀이나 대만의 부계 하플로에서 백제인의 부계 하플로를 발견할 수 있다면, 백제가 이 지역을 부용국으로 만든 적이 있다는 증거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4) M117 트리 부분 확대


위의 트리는 앞서 표3)M117 Phylogenetic 트리 중에서 일부분을 확대한 것입니다. 여기서, YP4864라는 표지 SNP 아래 두개의 샘플만 있습니다. 하나는 한국의 KPGP(Korean Personal Genome Project)에서 나온 KP00127이라는 샘플이고, 다른 하나는 Y-Full의 트리에서 나온 것으로 YF03382라는 필리핀에서 나온 샘플입니다.

 

KP00127은 제가 직접 SNP를 조사해서 하플로그룹트리상의 위치를 확정해 놓은 바 있습니다(KPGP(Korean Personal Genome Project)샘플들의 부계 데이타 분석, http://cafe.daum.net/molanthro/I4mi/191). KP00127SNP들을 조사할 때, M117 아래 먼저 가장 큰 하위 분지를 이루는 F5가 양성이나 그 당시까지 다른 알려진 F5 아래의 하위 하플로의 SNP는 양성인 것이 없어서, 한국인, 일본인, 북방계 알타이민족이나 북방한족 등에서 적지 않게 나오는 F5 아래의 특정한 하위 하플로가 없는 유형으로 판단했습니다. 이는 F5가 북중국 어딘가에서 신석기 시대즈음 (Y-full에 의하면 B.P. 7300)에 갑자기 폭발적인 확장을 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Y-Full에 갱신된 하플로트리를 보고, 설마하는 생각으로,필리핀 샘플 YF03382가 양성인 YP4864 YP4865를 검증해 보니, 한국인 샘플도 이 SNP들에서 양성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사실은 조금 의외의 결과이고, 백제 담로경영의 간접적인 증거로서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조심스런 추측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YP4864가 백제 담로의 증거가 되려면, 아직 또 다른 많은 검증이 필요합니다. 우선, 필리핀인들에게서 지방의 원주민들에게는 M117이 극히 낮은 비율로 존재하지만(M134 0.03%, Delfin et al.2016), 마닐라 등 대도시에는 상당히 많은 수의 복건성이나 광동성에서온 화교출신들이 상당히 있고,일반적인 필리핀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4% 정도까지 M134가 나옵니다(Karafet et al. 2010)

 

2016년에 대통령에 당선되어, 마약사범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과 필리핀의 외교정책 방향을 반미 친중국 노선으로 돌려 놓아 화제가 되고 있는 두테르테의 외조부도 복건성출신 화교로 알려져 있고, 두테르테가 중국방문 시 수행한 필리핀 상공회의소 소속 기업인들의 95%가 복건성 천주 출신의 화교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YP4864가 화교에게서도 나온 것인지, 중국의 본토에도 이 SNP가 양성인 유형이 존재하는 지 더 많은 샘플들이 검사된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또한, 한국인에게서 이 YP4864가 유래한 것이라 하더라도, 필리핀 내 사회적 문제로 까지 번져 말썽이 되고 있는 코피노나 가까운 역사 시기 ( 홍길동 집단 혹은 문순득의 표류?)에서 발생한 것일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이 백제의 담로 경영에서 나온 부산물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의 가계 조사와 이 샘플이나온 지역에 대한 현장답사 등도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보다 많은 자료들로 검증이 필요한 사안이지만, 이러한 검증을 해 볼만한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고, 만일, 중국 복건성 지역에서 온 화교의 후예에서 기인한 것이라밝혀진다 하더라도, 이것이 필리핀에서의 백제 담로 존재가능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사례는 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백제가 진평군을 설치했다는 사서의 기록(梁書, 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 自置百濟郡 )이 있고, 복건성의 복주지역은 한 때, 진평군(晉平郡)이었다가 진안군(晉安郡)으로 개칭된 역사있기 때문에, 이 지역 에 백제 담로의 영향이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일본인 M117 샘플들의 Full sequencing자료가 더 많이 확보된 이후에 다루어 볼 생각이 있는 과제로서, 현재 중국 복건성 지역 출신들에서 집중적으로 나오는 M117 아래의 CTS7634로서, 이 유형이 한국인에게서 나오면, 일반적으로 복건성 출신의 중국인의 이주로서 설명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다른 방향의 설명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여기까지 현대 한국인과 일본인의 중요한 원류인 백제에대해, 기존의 문헌사학이나 고고학적 연구와는 다른 분자인류학적 접근을 통해, 그 역사적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길이 있는 지를 주로 부계 하플로그룹 M117과의 관련하에서 검토해 보았습니다. 보다 직접적인 자료인 한반도의 백제지역이나 일본의 고인골에서 나온 DNA분석결과가 없는데다,저의 능력부족으로 인해 이번 글은 미흡한 점이 많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연관된 자료를 확보해서, 더 나은 분석도구들로,이 글에서 모자란 점을 보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합니다.

 

by chojae | 2017/01/27 23:05 | 인류 | 트랙백 | 덧글(0)
백제와 M117-2) 백제와 투르크
백제와 M117

2) 백제와 투르크

백제 역사에 대한 여러 사적을 보면, 여러 모로 투르크계와 관련이 있는 흔적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백제를 처음에 십제(十濟)라고 했다가 나중에, 백자제해(百家濟海)라는 의미로 백제(百濟)라 고쳤다하는 데, 10이나 100혹은 많은 숫자를 뜻하는 말로 투르크계 언어에서 on’이라는 말이 있으므로, 백제의 국명은 처음부터 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이것이 그들의 시조라고 일컬어지는 온조(溫祚)에 반영되었거나, 온조가 아예 그들의 국명이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십제 혹은 백제라는 명칭은 여러 부족이 모여진 숫자로 전체 무리를 아울러 칭하는 것으로, 이러한 명명법은 중국 북방의 투르크계통의 여러 유목민족들에게 자주 있어 왔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九姓鐵勒(동돌궐 경내의 철륵계 부족을칭하는 말), 十箭(서돌궐 경내 철륵계통 부족의통칭), 十姓回紇(당왕조 시기 위구르계통의통칭) 등이 있습니다. 또한 후에 주로 투르크계로변한 흉노제국과 같이, 좌현왕와 우현왕을 두었다든지백제에서 왕을 칭하는 말인 建吉支 또한 투르크어계통에서 우두머리를 뜻하는 코키시’, ’쾩키시등을 떠올리게 하며, 일본에 전하는 백제왕족의후손이라는 구다라노코니키시くだらのこにきし또한 이와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주로 하플로O2a2b1(M117)과 백제의 관계를 다루는 글이나, 백제에 대한 투르크계열의 영향을 보다 직접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하플로 Q에 대해서, 언급해 보겠습니다. 하플로 Q는 현재까지 여러 연구에서고대 흉노와 투르크계통 민족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계 하플로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이 하플로 Q 의 하위 하플로 중에서 유독 중국 한족에게 많이 나타나는 하위 하플로가 있는 데, 이는 M120을 표지 SNP로 하는 Q1a1a이고, 중국 한족에게 뿐만 아니라, 한자문화권의 한국, 베트남, 일본 등 중국 한족보다 하플로Q의 발현빈도가 낮은 인구집단들에게서도하플로 Q의 대다수는 이 M120이 점하고 있습니다.

 

최근 러시아에서 발간된 러시아 경내 알타이공화국의 청동기 중기의 고인골 DNA  셋을 측정한 논문[1]에서, Y-STR만 측정한 샘플은 DYS391 9인 특징을 가지는 Q1a1a(M120)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이로 볼 때, 중국 한족들에 많이 나타나는 M120도 기본적으로 다른 하플로 Q의 하위 하플로들과 마찬가지로, 청동기 시대 시베리아나 몽골고원, 중앙아시아 북부 일원에서거주하다가, 상나라(B.C.1600년경) 혹은 주나라 (B.C. 1000년경) 건립전에 현재의 산서성이나섬서성 일대에 도달하였고, 이들이 처음에는 융적으로불리다가, 나중에 서주왕조을 창립하는주요세력이 됨으로써 나중에 화하족으로 변하였다고 보여집니다.

 

이들이 서주왕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2014년 길림대학 연구팀에서 나온 논문[2]에서 서주 초기 제후국중의 하나인 고대의 붕국(倗国) 묘지들에서 출토된 고인골을 분석한 결과, 나라의 통치자인 붕백() Q1a1a(M120)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이 결과가 나온 후, 많은 논란이 있었는 데, 이것은 그 당시 서주의 희()성이 많은 제후국을 자신의 동족인희성으로 봉했지만, 일부는 자신과 부계가 다른 이들도제후국으로 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계 하플로  그룹 Q  밝혀진 붕백이 서주의 희씨와 동족이라면, 화하족의 시조는 원래 지금 중국한족 중에서는 그 비율이 높지 않은 소수가 되고, 현대 중국 한족의 다수를 구성하는 부계하플로 O그룹과는 다른 것이 됩니다. 그것이 아니라,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붕백의 집단은 원래 융적이었다가, 결혼동맹 등으로 하플로 O가 주류인 화하족 아래로 포섭된집단이라면, 현대 한족은 여전히 그들의 신화대로, 서주의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Q1a1a(M120)인 붕백은 서주의 서북쪽 변경에서융적의 침입을 막아내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한 만큼, 서주의 왕실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한국에도 대략 1~2%의 부계 하플로 Q에 속한다고 보고되고 있지만, 이 중의 대다수는DYS391 9 Q1a1a(M120)에 속하거나 혹은 더 적은 수로 역시 중국 한족에게 다수 존재하는 DYS391 6으로 나오는 유형이 있고, 역시 M120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해서 언급해보고 싶은유형은 따로 있습니다. 이 유형은 M120아래가 아닌 중국 한족 이외의여러 중앙아시아 및 시베리아지역에 분포하는 투르크어계 민족들에게서 다수 나타나는 M346아래의 하위 하플로로 추정되므로, M120보다 더 직접적으로 흉노 혹은 투르크계열과 백제와의 관련성을 보여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아래의 표에서 충청남도 공주로 출처가 표시된 샘플은 하플로 Q에 속한 것이 분명함에도한국 하플로 Q의 대다수인 Q1a1a(M120)와 상당히 다른 Y-STR유형을 보이고, 아마도 하플로 Q의 또 다른 분지인 Q1a2(M346)에 속한 것으로 보이고, 이 유형과 유사한 Y-STR하플로 유형들을 표로 나타내면아래와 같습니다.

 

5) 공주 M346 Y-STR 타입 및 유사한 Y-STR 샘플



맨 위의 충청남도 공주가 출처로 나온 샘플 및 몇몇 한국인 샘플에서 특이한 것은 DYS43911.1[1]로 나타난 것인 데, 이것은 매우특이한 변이형이므로, 이미 한국인에게서 드문 하플로 Q에 속하고, 이 변이형을 지니고 있다면, 거의 확실히 동일한 부계라 해도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역이 밝혀지지 않은 한국 성씨 12Y-STR을 수집한 자료에는 박씨중에 한 분이 역시DYS439 11.1로 나타납니다이 박씨 분과 공주에서 나온 샘플과는 동일한 부계에서나온 것이 분명하고, 이 유형과 유사하게 비록 DYS43911.1이 아니지만, 11로 나온충청도 샘플이



[1] Y-STR(Short Tandem Repeat) Y염색체 상에서 (TCTA)(TCTA)(TCTA)… 같이 개의 염기가 묶음으로 되어서, 묶음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횟수가 달라지는 것을 헤아려서, 변이 여부를 판단합니다. 예를 들어, DYS391에서 11에서 12 되었다함은 (TCTA)묶음이 11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이, 12 반복되는 것으로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1.1에서 0.1 붙은 것은 4 염기 전체가 묶음으로 반복되지 않고, 3개의 염기는 탈락하고, 1개의 염기만 남아 있는 것을 말합니다.



있는 것을 볼 때, 이와 유사한 유형이 충청도지역에 존재함을 알 수 있습니다.

 

나머지, 한국인 샘플 중에 지역을 알 수 있는 자료에는 M120이 아닌 하플로 Q에 속하는 Y-STR유형이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오사카, 나라, 아오모리, 이와테 등 지역에서 이 유형이 보이는 데, 이 중 둘이 야마토 조정의 중심이었던 오사카와 나라의긴키지역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서,덕수 이씨 모달과 유사하게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간유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이 유형들의 Y-STR값들은 1500년 전에 하나의 부계 조상에서 분화되었다고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여서, 한반도에 도착할 때,이미 동일하게 M346에 속한 하위 하플로이나 서로 다른 부계를 가지는 몇몇 인물들로 구성된 집단으로 왔고, 원래 투르크계 북방 민족의 일원이었다, 부여에 흡수된 뒤,부여의 지배층 일원으로 남하하여 백제에 왔을 가능성이크다고 봅니다. 이와 유사한 Y-STR을 보이는 러시아 알타이 공화국의 Chelkan인들은 이미 Y-SNP M346인 것으로 측정되었습니다. Chelkan인과 중국 신쟝자치구의 위구르인들은 DYS390=24, DYS392=14로 이 값이 각각 25, 15인 한국, 일본 및 중국 한족들 샘플과는 다르므로, M346 아래의 서로 다른 하위 하플로에 속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들은 아마도 흉노제국시기 혹은 그 이전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미 이주를 시작하였을 것입니다.

 

 

 

6) 중국 한족 조상의 고대 인골  DNA 분석 결과


붕국의 고대 분묘군에서 발굴된 인골들을 귀족(Aristrocrat), 평민(Commoner), 노예(Slave) 신분등급에 따른 부계 하플로 그룹 비율로 분석한 것과 Prostrate(시신을 묘지에 얼굴이 땅을 향해 눕히는 ) Supine(시신을 얼굴이 하늘을 향하도록 반듯이 눕히는 것)으로 구분하여 표시.[1]


이들 하플로 Q가 비록 한국인과 일본인 중에, 이 유형이 적은 비율로 나타나지만, 주목해야할 사실은, 앞서 언급한 서주 초기 붕국묘들을 발굴한 결과에서 귀족들로 확인된 6명 중에서 3명이 하플로 Q1a1a(M120), 나머지 세명 중 하플로 O3a  둘과 하플로 N은 하나로서, 귀족들 중에 하플로Q가 다수를 차지합니다. 또한 이보다 500년 정도 지난 동주시대 영하자치구 팽양의 왕족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묘지에서 출토된 고인골에도 역시 하플로 Q가 나타납니다. , 하플로 Q가 시베리아나 유라시아초원을 통해, 앞선 청동기 기술을 받아들이고, 초원의 기마전술 등에도 능숙하였을 것이므로, 그 당시 동아시아지역에 이러한 면에서 뒤쳐진 하플로O C를 위주로 하는 집단을 정복하여, 지배층으로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발생한 여러 부계 하플로그룹 중에서 비교적서북쪽인 중국 감숙성, 섬서성 방면의 앙소문화에서 기원하여, 확장을 시작하였을 가능성이 큰 M117 혹은 그 하위의 F8 아래 여러 하위 하플로은 그 지리적인 위치로 말미암아,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의 청동기문화를 비교적 일찍 접촉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덕수 이씨 모달이 속한 CTS5308도 처음 융적으로 중원지역에 알려졌었던 하플로 Q와의 비교적 이른 접촉으로 이들을 지배층의 일원으로 받아 들이거나, 혹은 최고 지배층으로 삼았을 것입니다. 그 후, 부여라는 정치공동체로 중국 동북지역에서 발전하고, 이들이 함께, 남하하여, 백제의 지배층을 이루었고,앞서 언급했듯이, 백제의 초기 역사에서 투르크계과 관련있는 여러 사실들이 남았을 것입니다. 이를 볼 때, 동아시아 전역에서M117 아래 여러 하위 하플로들의 성공적인 확장은 하플로 Q와 같은 선진적인 청동기를 소유한 외래의 인구집단과 다른 동아시아 토착 하플로들보다 일찍접할 수 있었던 지리적인 잇점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원래 지배층이었을 하플로Q가 후대로 갈수록 인구집단을 성공적으로 확장하지 못한이유는 고대 이집트나 신라 왕실의 성골집단과 같이, 지나친 족내 근친혼으로 지배집단 수를 억제하려 했다든지, 혹은 중국 동진의 사마씨와 같이, 지배층 내부의 격렬한 내분이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이들이 만주족 애신각라씨와 같이, 추운 시베리아와 몽골고원지역에 오래 지내다가, 비교적 따뜻한 남쪽으로 와서, 천연두와 같은 전염병에 취약해서, 빠르게 지배층의 수가 감소해서 였을 수도 있고, 위에 언급한 여러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1] Zhao et al. <Ancient DNA Evidence Reveals that theY Chromosome Haplogroup Q1a1 Admixed into the Han Chinese 3,000 Years Ago>2016.





by chojae | 2017/01/27 23:00 | 인류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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