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金)씨의 부계 하플로 분포 추정


한국인 중 가장 많은 성씨답게, 한국인에게서 발견되는 Y-HAPLO 그룹 대부분이 나타나는 것이, 김씨의 하플로 그룹 추정 분포이다. 특기할만한 사항은 C3이 일반적인 연구(10~15%)에서 보다 높게 나타나는 데,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국인의 5대 성씨인 김, 이, 박, 최, 정씨 중 C3의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은 정씨로 24%가 넘는다. 나머지, 김씨와 이씨도 20%가 넘게 나오고, 최씨와 박씨에서는 일반적인 비율과 비슷하게, 12~13%사이로 나온다. 한국 5대 성씨의 C3(M217) 에는 북방의 부리야트 몽골과 오이라트 몽골에 많이 나타나는 C3d의 표준값과 유사한 STR값을 보여주는 타입들이 제법 나타난다.

C3d(M407)의 SNP를 측정한 Malachuk  2010 논문에서 한국인 샘플에게서 C3d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들 C3d와 유사한 C3 유형은 para C3*그룹에서 C3d의 분기 이전에 북방 몽골로이드계와 분리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왜 한국인에게서 C3c나 Q1a3 등이 거의 없는 지에 대해서도 유사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늦어도 C3c나 C3d, star cluster가 본격적으로 확장한 몽골제국 성립 이전에는 이들 북방 몽골로이드와 분리된 그룹이 한국인의 조상이 되는 그룹에 합류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인의 C3 중, 몽골제국의 본류라 할 수 있는 Nirun ulus와 관계 깊은 star cluster나 에벤키, 나나이 등 북방 퉁구스에  비율이 높은 C3c에 가까운 유형은 거의 없고, 서부 몽골 그룹인 부리야트, 오이라트계인 C3d에 가까운 유형이 많은 것으로 보아, 한국인의 C3  중 북방몽골로이드와 가까운 그룹은 유라시아 중앙부 즉, 바이칼호에 가까운 지역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는 한국인의 부계 하플로 N 중에서 다른 몽골, 만주, 일본 등 동북아 몽골로이드 집단과 다르게, 바이칼호 주변의 야쿠트에게서 나타나는 야쿠트 모달에 가까운  N1c1의 타입이 나타나는 것과도 관계가 깊다고 본다. 아마도 이들은 함께 동쪽으로 와서, 요동과 한반도로 퍼졌을 것이다.

이전에 내게 질문을 해온 분들을 위해 미리 언급하자면, 한국인의 표지 부계 하플로라 할 수 있는 O2b(M176)이 가장 높은 비율로 나타나는 성씨는 박씨로 이 성의 부계 하플로 중 약 46%에 달한다. 다른 4개의 성씨에는 이렇게 높은 비율로 나타난 것이 없다. 비록 현대의 박씨를 대상으로 한 조사이지만, 박씨가 김씨나 이씨와 다르게, 단일기원으로 말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특별히 높은 비율의 O2b는 신라 박씨의 기원에 대해서 상당히 강력한 논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김씨 샘플에 나타난 특별하게 하플로그룹 L으로 추정되는 샘플은 이전 Kim Wook 2010 <O2b Korea> 논문에 나온 세개의  L 샘플 중 하나와 매우 유사한 STR값(genetic distance =1)을 지니고, 이들 두 샘플은 더 정확히 하위 하플로를 언급하자면,  L1b(M317)이나 L1b1(L656)으로 보인다. 이는 인도 드라비다어 계통 민족보다는, 오히려, 아르메니아, 터어키, 혹은 유럽의 사이프러스, 이탈리아 등의 L1b의 STR값과 가깝다. <O2b Korea>에서 나머지 두 개는 각각 L1, L1c로 전형적인 인도 드라비다계에 가까우므로, 해상 루트를 통한 한반도의 도래 가능성이 높은 반면, 이 L1b는 몽골의 고려원정 등을 통한 육상 루트로 도래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by chojae | 2012/01/28 11:52 | 인류 | 트랙백 | 덧글(9)
다시 인도?
나는 이전 두 개의 포스팅에서 한국과 인도가 지리적 거리 만큼 유전적 거리는 멀지 않을 수도 있음을 논한 바 있다. 하나는 한국인에게서 인도의 드라비다어 계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계 하플로 L(M20)이 있음을(http://yayul.egloos.com/2823420),  또 하나는 Dienekes의 상염색체 비교에서 의외로 한국인과 두번째 가까운 집단으로 인도의 동부에 존재하는 Ao와 Nishi가 나타난 사실에 대해서 논했다(http://yayul.egloos.com/2829288)  물론, 인도(파키스탄, 방글라데시를 포함)라는 오래된 문명의 역사를 지닌, 거대한 인구집단에서 그 전체가 한국인과 연관이 있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럴 가능성도 없다. 단, 한국인의 형성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알타이어로 대표되는 북방 민족(투르크, 몽골, 퉁구스 등)과 밀접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또 한편으로 이들과의 관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연원이 있을 가능성이 큰 언어학적, 인류학적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이 오래된 난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인도의 여러 민족이나 언어들을 자세히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다시 다른 논문을 통해 나타났다.

벌써 작년이 된 2011년 12월 29일 PloS ONE에 올라 온, Xiong Yang et HUGO consortium. 2011 <Identification of Close Relatives in the HUGO Pan-Asian SNP Database>라는 논문의 주 논지는 HUGO 컨소시엄이 수집한 아시아인의 상염색체 데이타 중에 부모-자식 간 혹은 형제간을 의미하는 매우 가까운 친족관계의 샘플과 중복된 데이타가 있음을 보인 것이다. 내가 주목한 것은 이 논문에 나타난 MDS-plot 이다. 아래의 표를 보자.



Individuals from India tend to disperse from each other, indicating a more significant genetic divergence among populations and individuals in India. In addition, the individuals from Japan and South Korea clustered tightly together and slightly overlapped with individuals from China, reflecting a close genetic relationship between Japanese and Korean populations, which was also observed in the previous study [1] (Figure 1)

인도인은 위의 인용문에도 언급했듯이, 큰 유전적 다양성을 보이지만,  특기할만한 것은 4개의 인도인 샘플이 KR,JP로 대표되는 한국인, 일본인 샘플과 가깝게 위치하는 것이다. HUGO 데이타베이스에 있는 인도인 샘플들, IN-DR (Proto-Austroloids),IN-DR (Proto-Austroloids),IN-EL (Caucasoids (may have admixture with Mongoloids)),IN-IL (Caucasoids),IN-NI (Mongoloid features),IN-NL (Caucasoids),IN-SP (Caucasoids), IN-TB (Mongoloid features), IN-WI (Caucasoids),IN-WL (Caucasoids) 들 중, 어떤 것이 이 4개의 샘플에 해당하는 지 위 논문에서는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Dienekes의 Dode-Cad의 결과와 비교해 볼 때, 히말라야 산맥과 가깝게 위치한 IN-NI(Pahari)나 IN-TB(Spiti)가 유력한 후보가 될 것이다.

일본어와 한국어 모두 인도 드라비다어와의 관련성이 제기된 적이 있지만, 인도 내의 Tibeto-Burman계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이나 Indo-European를 사용하는 민족과의 관련성은 특별히 조사된 것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민족들을 포함해서, 전반적인 인도 여러 민족에 대해 세분화된 연구가 많이 진행되면, 역사 문헌의 기록이 소략하고, 지리적 거리나 이동경로에 대한 의문으로, 개연성이 적은 신화로 여겨져 왔던 허황옥이나 석탈해의 인도로부터 도래설도 트로이의 신화처럼 의문의 베일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인류학의 여러 데이타들은 그 실재성을 믿고, 더 연구하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by chojae | 2012/01/08 00:07 | 인류 | 트랙백 | 덧글(8)
몽골의 인구가 적은 원인
The effect of this conversion, especially on the Eastern Mongols, was profound, pervasive, and persistent, lasting until the establishment of Communist rule in 1921. It affected the Mongols’ political, social, and economic structure, cultural life, and demography. Demographically, it ended up draining some 40 percent of the male population into the country’s numerous lamaseries, with a nearly suicidal effect on the population. It is indeed an irony of Mongol history:  a nation that paid a heavy demographic price for its dazzling military empire in the Middle Ages, and then again for its total abandonment to a quietist religion in the modern era.

-Svat Soucek ,< A history of inner Asia 2000>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탄식이나 한숨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위 문단을 읽다가, Soucek이 단순한 사실을 전달하기보다는 그가 느낀 안타까움을 독자와 공감하려 한다고 믿는 것은 나 혼자만의 착각일까?  Soucek은 그 이름으로 볼 때, 아마 체코 혹은 헝가리 배경의 Turkologist로 보이며, 이 책을 쓸 당시는 프린스턴 대학 도서관의 Bibliographer로서 재직하고 있었다. 몽골계 민족은 그의 전문 영역인 turkic계 민족과 함께 유라시아 스텝 상 유목 민족의 팽창을 대표하는 민족이다.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turkic계 민족이 거의 1억 5천만~1억 8천만으로 추정될 만큼 급격한 인구의 증가를 이루었고, 정치적으로 터키를 비롯하여,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키르키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의 독립국가와 러시아와 중국 등에 많은 자치구를 이루어서,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다. Pan-Turanism이라는 알타이어계 민족(투르크계, 몽골, 만주를 포함하는 퉁구스, 일부에서는 한국, 일본까지 포함)의 결집과 세력화를 언급할 때, 투르크계가 중심이 되는 것은 현재의 양상을 볼 때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 몽골계 민족은 독립된 국가는 구소련과 중국의 세력다툼으로 인해 살아남은 몽골공화국 고작 하나이고, 러시아 내 Kalmyk, Buriyat 의 자치 공화국, 중국 내 한족이 이미 인구의 다수를 차지한 내몽골 자치구와 다른 성 내 몇 개의 작은 자치현(Dongxiang, Tu) 등이 있을 뿐이고, 전세계적으로 몽골어계(Mongolic)의 사용 인구도 1천만이 채 안 될 정도이다. 이는 칭기스칸과 그의 후손들이 이룩한 세계사적으로 비할 바없이 거대했던 Pax Mongolica 시절과 비교해 볼 때, 투르크계 민족이 지난 역사에서 성취한 영향력과 대비해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축소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A history of inner Asia>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부분은 후돌궐제국의 등장부터 시작하는 초원 유목민족의 유라시아 내부로부터의 팽창과 이슬람교의 이 지역에로의 확장이다. 투르크계 민족이 기존의 마니교, 불교, 네스토리우스교 등에서 이슬람교로 개종이후부터, 정치군사적인 팽창은 선교에 대한 종교적 열정과 결합하여, 더욱 촉진되고, 정복한 영역의 주요한 피지배민족인 이란계, 아랍계와 종교적 문화적으로 쉽게 융화할 수 있었고,  아랍과 페르시아의 선진문화를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매개로 수용함으로써, 문화적으로도 높은 성취를 이루었다.  반면, 몽골계 민족은 투르크계 민족보다 더욱 뛰어난 정치군사적 재능과 거대한 정복영역에도 불구하고, pax mongolica 시기에는 특정 종교에  대한 밀착이 적었고(비록 지배층 일부는 라마교에 기울었지만), 이후, 원제국 멸망 이후, 원래 몽골 고원으로 퇴각한 이후에야, 15, 16세기에 걸쳐  Dayan Khan, Alkan Khan 등 지배층의 적극적인 정책에 힘입어, 거의 모든 Khalka계 동몽골인은 라마불교 신자가 되었고,  이의 영향으로 오이라트계(후에 러시아로 이주하여 Kalmyk으로 불리는 이들)까지 라마불교를 믿게 되었다. 

그렇다면 Soucek의 판단대로 몽골계 민족이 집단적으로 불교로의 귀의한 것이 몽골계의 축소를 가져 온 원인일까? 현상적으로 보면,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총포를 비롯한 화약무기의 유행으로 전쟁의 양상이 바뀌어 감에 따라, 더 이상 몽골제국 시절과 같은 팽창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 초원의 낮은 생산성과 인구 부양의 압력에 직면한 몽골계 민족이 외부로의 확장보다 내면으로의 침잔, 윤회를 통한 구원을 선택한 집단지성의 또다른 지혜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하더라도, 이슬람교를 매개로 피지배집단의 동화를 큰 저항없이 이끌어내고, 농경민족과의 교환이나 약탈에 의존하는 유목이라는 단순한 생활양식 대신 관개 농업과 공예, 상업 등으로 생존양식을 다양한 시켜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확장에 성공한 투르크계와 비교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by chojae | 2011/12/12 00:59 | 인류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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